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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 독서 말씀]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며, 살아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다 : 욥기 (19,1.23-27)

제임스
2026-11-01 21:16 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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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반가운 만남보다 안타까운 이별의 소식이 잦아진다. 
얼마 전까지 함께 식사하며 웃고 이야기하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허전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죽음을 먼 훗날의 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우리 삶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 위령의 날을 맞아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내 삶에 소중한 인연을 남긴 이들을 기억한다.
위령의 날은 단순히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아니다.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며,
죽음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부활의 희망을 되새기는 날이다.
오늘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외친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욥은 자신의 고통과 삶이 잊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말씀을 읽으며 먼저 떠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은 세상을 떠나지만 그가 남긴 사랑과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어려울 때 건네준 위로가 마음에 남는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도 그렇다.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가 베풀어 주셨던 사랑은 여전히 내 삶에 남아 있다.
이제는 직접 뵐 수 없지만, 기도할 때면 그 사랑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다. 그리고 그 사랑은 기도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욥은 절망 속에서도 놀라운 고백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의 그림자 앞에 서 있으면서도
욥은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우리는 슬퍼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슬픔에는 부활에 대한 희망이 함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기에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이 말씀은 언젠가 하느님을 직접 뵙고자 하는 간절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먼저 떠난 이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며 영원한 안식을 청할 수 있다.
위령의 날에 바치는 기도는 떠난 이들을 단순히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사랑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는 신앙의 행위이다.
최근 친구들의 부고를 접하면서 나 자신의 마지막도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는 나 역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내가 남긴 업적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을 남겼는가 하는 점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어둡게 바라보는 일이 아니며,
오늘 함께하는 사람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감사와 사랑을 미루지 않게 하는 일이다.
위령의 날은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인 동시에,
남아 있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친구들,
소중한 인연으로 머물렀던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린다.
그들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하며,
나 역시 남은 삶을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 가고 싶다.
언젠가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때,
두려움보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욥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주님, 세상을 떠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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