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27)의 독서 말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일 : 에페소서 (5,21-33)
제임스
2026-10-27 07:05
10
0
본문
부부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에는 설렘보다 더 깊은 이해와 인내,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며 사랑의 본질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이 말씀은 오늘 독서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바오로는 아내와 남편의 역할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서로 순종하라고 권고한다.
바오로는 아내와 남편의 역할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서로 순종하라고 권고한다.
순종이라는 말은 오늘날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은 남녀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은 남녀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현대적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구분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바오로가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바오로가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내어 주는 관계를 지향한다.
바오로는 남편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여기서 사랑의 기준은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따르게 하는 권위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무엇을 내어 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결혼생활을 돌아보면 젊은 시절에는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가정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경제적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사랑의 중요한 표현이라고 여겼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경제적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사랑의 중요한 표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정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안정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기 쉽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감사와 배려의 표현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랑은 오래 함께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서로를 새롭게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 속에서 깊어진다.
바오로는 이어서 말한다.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몸이 아프면 돌보고, 피곤하면 쉬게 하듯
배우자의 어려움과 고통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서로의 능력과 성취를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건강과 일상의 평안이 더욱 소중해진다.
몸이 불편한 날에는 서로를 보살피고, 마음이 지친 날에는 곁을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부부의 사랑은 특별한 날의 선물이나 화려한 표현보다 이러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에게는 수많은 추억이 쌓인다.
즐거웠던 일도 많지만, 서로에게 서운했던 순간이나 이해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도 서로의 곁을 지켜 왔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잘못을 용서하며, 함께 늙어 간다는 것은 결코 작은 사랑이 아니다.
바오로는 부부가 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개성을 잃고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상대방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처럼 여기는 관계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바오로는 이 신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확장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자신을 내어 주셨듯이,
우리도 가정 안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정은 우리가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다.
밖에서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도 집에서는 쉽게 짜증을 내거나 자신의 뜻을 고집할 때가 있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가장 소홀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사랑은 먼 곳에서 특별한 봉사를 하는 일에 앞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배우자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살아왔는가.
그리고 그에 비해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내어 주었는가.
오랜 세월 함께해 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정작 그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부부의 사랑은 누가 더 많은 것을 얻었는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얼마나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었는가로 깊이를 더해 가는 것일 것이다.
이제 남은 세월에는 서로의 부족함보다 함께해 준 고마움을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부부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를 존중하고 보살피며,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