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 칸타타를 관람하고
본문
순교의 피로 피어난 신앙, 세상을 향한 밀알이 되다
우리나라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서도 매우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외국 선교사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평신도들이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이후 혹독한 박해 속에서 수많은 순교자의 희생을 통해 오늘날의 교회로 성장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신앙을 받아들이던 교회에서 신앙을 나누는 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해외 선교의 길을 걸어온 지 51년째를 맞아 새로운 50년을 향한 다짐을 담은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 칸타타」가 동성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아내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뜻깊은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광암 이벽의 「천주공경가」였다.
200여 년 전, 신앙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사제조차 없던 시절에 어떻게 하느님과 인간, 신앙의 본질을
그토록 깊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이벽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못지않게,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동료들을 이끌었던 이벽의 역할이 더욱 근본적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오늘 그의 노랫말을 들으며 그때의 감동이 다시 살아났다.
이어지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하였다.
“죽어도 주님을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작은 불편이나 손해를 감수하는 일조차 어려워하는데,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았다. 그들에게 신앙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순교 정신은 어떤 의미일까.
반드시 생명을 바치는 것만이 순교 정신을 실천하는 길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며,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 역시 그 정신을 이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외방선교회의 활동은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우리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낯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다.
희생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사랑과 헌신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복음 말씀이 떠오른다.
이벽과 이승훈이 뿌린 신앙의 씨앗은 수많은 순교자의 희생을 거쳐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큰 나무로 자라났다.
그리고 이제 그 나무의 열매가 세계 곳곳에 새로운 씨앗으로 뿌려지고 있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우리가 누리는 신앙이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순교자들이 신앙의 씨앗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오늘의 우리는 그 씨앗이 세상 곳곳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순교자들을 진정으로 현양하는 길이며, 한국 천주교회가 새로운 50년을 향해
나아가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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