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0.25)의 제1독서 말씀]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 탈출기 (22,20-26)
본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사람, 낯선 환경에서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어려움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쳐 버릴 때가 많다.
오늘 탈출기의 말씀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이 단순한 선행을 넘어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자세임을 일깨워 준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집트에서 억압받았던 경험을 잊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같은 고통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나면 두 가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고생했으니 다른 사람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기억하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고통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때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작은 도움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떠오른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고 시간이 흐르면 그때의 어려움을 쉽게 잊어버린다.
도움을 받던 사람이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과거에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당시 과부와 고아는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날에도 홀로 살아가는 노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과 이주민 등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그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불리한 처지를 이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들으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우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것은 가난한 사람의 겉옷에 관한 규정이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겉옷은 밤의 추위를 막아 주는 유일한 덮개일 수도 있었다.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담보를 잡을 권리가 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권리보다 가난한 사람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그것을 끝까지 행사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사회에는 원칙과 질서가 필요하지만, 그 원칙이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삶을 무너뜨리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지금까지 받은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도움이 반드시 큰돈이나 특별한 희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홀로 지내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고, 어려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누군가의 부족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일도 사랑의 실천이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라면, 그분을 믿는 우리 역시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의 겉옷 한 벌까지 걱정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웃의 작고 사소해 보이는 고통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어려운 이웃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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