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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9.16)의 독서 말씀] 나는 당신을 다 알지 못합니다 : 코린토 1서 (12,31―13,13)

제임스
12시간 7분전 5 0

본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게 우리는 쉽게 말한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지.”

부부는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고,

오래된 친구의 성격과 생각도 다 안다고 여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어느 날 배우자에게서 전혀 몰랐던 모습을 발견한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자녀가 뜻밖의 선택을 하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에게 내가 몰랐던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기도 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참 겸손한 말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부분적으로밖에 알 수 없다.

어쩌면 나 자신조차 완전히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판단이 시작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래.”

내가 그 사람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삶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일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 있고, 알지 못하는 상처가 있으며, 나에게 말하지 않은 사정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상대방을 다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기도 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라고 바오로는 말한다.

왜 사랑에는 기다림이 필요할까.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때에 변하지 않고, 기대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때로는 나를 실망시키기도 한다.

그때 사랑은 상대방을 내 뜻대로 바꾸려 하기보다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지만,

화가 날 때 한 번 참고 상처받았을 때 오래 품지 않으며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 주는 데에는 선택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은 말보다 행동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랑한다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한 번의 행동이 더 깊은 사랑일 수 있다.

바오로는 아무리 많은 지식과 놀라운 능력이 있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나누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평생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좋은 성과를 내고,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사라진다.

직책도 사라지고 명예도 희미해지며, 평생 쌓은 지식도 새로운 지식에 자리를 내어 준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그런데 끝까지 남는 것이 있다. 사랑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말씀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직책을 가졌는지보다

자신에게 어떻게 대해 주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지보다

힘들 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훌륭한 말보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었던 순간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누구를 어떻게 사랑했는가일 수 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라고 바오로는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상대방의 사정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며 살아왔는가?

내가 알고 있는 작은 부분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랑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 알 수 없으니 기다려 주고,
다 이해할 수 없으니 한 번 더 들어 주며,
완벽하지 않으니 서로의 부족함을 덮어 주는 것이다.

언젠가 삶을 마무리할 때 내가 얼마나 많이 알았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가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기보다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기보다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며,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상대방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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