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9.14)의 독서 말씀] 조급할수록 길을 잃는다 : 민수기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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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동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데 도로가 꽉 막혀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기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급해진다.
‘왜 하필 오늘 이렇게 막히는 거야.’
옆 차선이 조금 빨리 움직이는 것 같으면 얼른 차선을 바꾼다.
그런데 막상 옮기고 나면 조금 전 내가 있던 차선이 더 빨리 움직인다.
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길이 막힌 것보다
조급해진 내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들은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목적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눈앞에는 끝없는 광야가 있었고 먹을 것과 마실 것도 부족했다.
마침내 불평이 나왔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자신들을 살려 주었던 양식마저도 “보잘것없는 양식”이라며 투덜거린다.
참 이상한 일이다. 처음에는 감사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한 것이 되고,
당연한 것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불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첫 직장을 얻었을 때는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평이 생긴다.
처음 집을 마련했을 때는 기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집이 눈에 들어온다.
곁에 있어 주는 가족도 너무 익숙해지면 고마움을 잊기 쉽다.
익숙함은 때때로 감사의 기억을 지워 버린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등장한다.
불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백성은 그제야 모세에게 찾아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뱀을 모두 없애 버리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나를 물었던 뱀을 다시 바라보라니 참 이상한 처방이다.
이 장면을 오래 묵상하다 보면
치유는 때때로 ‘나를 아프게 한 것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픈 기억을 피하고 싶어 한다.
실패했던 일은 잊고 싶고, 내가 잘못했던 일은 변명하고 싶다.
관계가 틀어지면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기 쉽다.
그러나 상처를 덮어 둔다고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무엇 때문에 욕심을 부렸는지,
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을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어디가 아픈지를 찾아야 하듯이
마음의 상처도 먼저 바라보아야 치유가 시작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본 구리 뱀은 자신들을 아프게 했던 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뱀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불평과 조급함,
그리고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함께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두 개의 ‘시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는 눈앞의 불편함만 바라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상처와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앞의 시선에서는 불평이 생겼고, 뒤의 시선에서는 치유가 시작되었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도 광야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수록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조급하다고 길이 짧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급해질수록 이미 받은 것을 보지 못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잘못된 길을 선택하기 쉽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는 내 마음대로 앞당길 수 없는 일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있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으며,
천천히 회복되어야 하는 것도 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조급해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아프다는 이유로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가?
광야를 없앨 수는 없어도 광야를 걷는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없앨 수는 없어도
그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신앙은 모든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청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서두르기보다 조금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이미 받은 것을 다시 바라보고, 피하고 싶었던 상처도 용기 내어 바라보며,
아직 목적지가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을 믿고 걸어가고 싶다.
조급할수록 발걸음을 재촉하기보다 먼저 시선을 바로잡아야 한다.
길을 잃게 하는 것은 때로 먼 광야가 아니라 조급해진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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