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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의 바다는 오늘도 빛나고 있었다 (성지순례)

제임스
2026-09-12 09:30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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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시대의 신자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먹고살 길조차 막막했던 그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일 가운데 하나가 옹기를 굽는 일이었다

흙을 구할 수 있고 산에서 땔감을 얻을 수 있었으며

외진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워낸 옹기를 바라보면 단순한 생활용품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흙을 빚어 불 속에서 견뎌내야 비로소 단단한 그릇이 되듯

박해의 불길을 견디며 신앙을 지켜낸 사람들의 삶과도 닮아 보인다.


갈매못 성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와 위앵 루카 신부,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이 바로 이곳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였다. 그날은 성금요일이었다.

성지에서는 이들뿐 아니라 박해의 세월 속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바다에 수몰된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희생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름을 남겼지만, 더 많은 사람은 이름조차 역사에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바라보는 갈매못의 바다는 너무도 아름답다.


햇빛을 받은 바닷물은 눈이 부실 만큼 반짝이고 있었다

저토록 평화로운 바다가 한때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시선을 받아주었던 바다라고 생각하니 

아름다움이 오히려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까.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족도 생각났을 것이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순교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죽음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월은 흘렀다

그들을 죽이려 했던 권력도 사라졌고 박해의 칼날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죽음 위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자라났다.

문득 바다 위에 부서지는 햇빛이 꽃처럼 보였다.

그 옛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희생이 

이제야 저 반짝이는 물결 위에서 하나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매못의 바다는 오늘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신앙 선조들이 남겨놓은 믿음의 빛이었다.

그들이 뿌린 순교의 씨앗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안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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