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9.12)의 독서 말씀] 나는 어느 식탁에 앉아 있는가 : 코린토 1서 (10,14-22)
제임스
2026-09-1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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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는 데에는 함께 밥을 먹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먹하던 사람도 한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열린다.
같은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새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된다.
같은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새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사람을 만나면 흔히 말한다.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읍시다.”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행위이기도 하다.
오늘 바오로 사도도 식탁을 이야기한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한 빵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서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음식에는 본래 이런 힘이 있다.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단순히 영양분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관계를 확인한다.
친구와 함께하는 한 끼도 그렇다.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먹었는가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많다.
그래서 바오로는 식탁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한편으로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상의 식탁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옛사람들처럼 우상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절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우상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
돈이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이 되면 돈이 우상이 될 수 있다.
명예와 지위 때문에 사람을 이용한다면 명예가 우상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는다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나를 지배하는 우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도 하나의 우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지배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돈을 가진 것과 돈에 지배당하는 것은 다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과 그 자리를 놓지 못하는 것도 다르다.
자기 생각을 갖는 것과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는 것도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바오로의 말씀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느 식탁에 앉아 있느냐?”
사랑과 나눔의 식탁인가, 아니면 욕심과 경쟁의 식탁인가.
감사와 용서가 오가는 식탁인가,
아니면 불평과 험담이 끊이지 않는 식탁인가.
아니면 불평과 험담이 끊이지 않는 식탁인가.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식탁에 앉는다.
가족의 식탁에 앉고,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직장이나 공동체의 사람들과도 음식을 나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식탁 위에 무엇이 놓여 있는가보다
그 식탁에서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일 것이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한다면 풍성한 식탁이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소박한 밥 한 끼라도 서로의 어려움을 들어 주고 위로하며 웃음을 나눈다면
그보다 풍요로운 식탁도 많지 않을 것이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라고 바오로는 말한다.
서로 생각도 다르고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한 식탁에 앉는 순간 우리는 서로 연결된다.
그래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약속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이 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쁨과 아픔을 나도 조금은 함께 나누겠습니다.
당신의 기쁨과 아픔을 나도 조금은 함께 나누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식탁보다 함께 앉을 사람이 있는 식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좋은 음식보다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이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으며,
나 또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식탁이 귀하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내 삶의 식탁을 돌아본다.
나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식탁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내 욕심과 고집 때문에 누군가를 식탁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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