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제2독서 말씀] 인간의 자격에서 시작되지 않은 하느님의 사랑
본문
로마서 5장 6-11절은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자격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고,
일을 잘하면 인정받고,
착하게 살면 사랑받는 것이 인간 세상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내가 충분히 선해지면 하느님께서 사랑하실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바오로는 정반대의 사실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의인이 된 뒤에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부족하고 연약하며
죄 가운데 있을 때 먼저 다가오셨다.
마치 병이 다 나은 사람을 위해 의사가 오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을 위해 찾아오는 것과 같다.
바오로는 이를 더 강하게 설명한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움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착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시작된 것도 아니며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문득 부모의 사랑이 떠오른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돈을 벌 수도 없고,
부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으며,
심지어 밤새 울어 부모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보다 훨씬 더 깊다.
바오로는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도 화해하게 되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께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미셨다는 뜻이다.
특히 오늘 말씀에서 마음에 남는 단어는 "화해"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한 번 틀어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배신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용서보다 복수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배신 앞에서도 관계를 끊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화해의 다리를 놓으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보내신 화해의 편지와도 같다.
성당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착각에 빠진다.
"나는 기도를 열심히 했으니 사랑받는다."
"봉사를 많이 했으니 인정받는다."
물론 기도와 봉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응답이다.
신앙의 출발점은 내가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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