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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독서 말씀]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길

제임스
2026-04-29 21:12 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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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3,13-25을 묵상하며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 앉아 있는 바오로의 모습은 좀 낯설면서도 익숙한 장면이다.
낯선 도시이 등장하고 익숙한 말씀이 전개됩니다. 율법과 예언서가 봉독되고, 그 말씀을 해석하고 전하는 자리. 그곳에서 바오로는 단순한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를 다시 읽는 일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차분히 되짚는다.
조상들의 선택, 이집트 탈출, 광야의 인내, 가나안 정착, 판관 시대, 왕정의 시작, 그리고 다윗. 이 긴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고백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걸어오셨다.”
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면 신앙은 어떤 ‘순간의 결심’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바오로의 설교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모든 사건의 주어가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하느님께서 이끄시고
하느님께서 참아 주시고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하느님께서 보내신다
인간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느님의 역사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을 우연과 선택의 결과로만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손길을 읽어낸다.
돌이켜 보면 기쁨의 순간뿐 아니라 실패와 방황의 시간까지도
어딘가에서 우리를 이끌어 온 흐름이 있다.
광야의 40년이 그러했듯이 하느님은 완전한 사람만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참고 기다리시며 이끄신다.

가톨릭 신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깊어진다.
하느님은 나의 현재뿐 아니라 나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품고 계신 분이라는 믿음.
바오로는 다윗 이야기에 이르러 설교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하느님은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하시고 때가 되면 그 약속을 이루신다.
사람은 쉽게 잊는다. 기도도 잊고, 다짐도 잊고, 은총도 잊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잊지 않으신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다윗에게 하신 약속, 그리고 인간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가톨릭 신자라면 이 ‘기다림의 신앙’을 배워야 한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시간 안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를 묵상한다.

바오로의 설교는 세례자 요한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 한마디는 신앙의 본질을 드러낸다.
요한은 위대한 예언자였지만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오시는 분을 가리키는 사람이었다.
가톨릭 신앙에서 겸손은 단순한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이다.
내가 중심에 서 있으면 하느님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내가 물러설 때 비로소 하느님이 드러난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을 믿는다 말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기준.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고백은 우리를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가리켜야 할 분은 누구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을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긴 이야기의 ‘이어지는 부분’으로 자신을 이해한다.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이야기, 모세와 광야를 지나,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이야기.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는 바오로를 통해 계속 이어진다.
가톨릭 신자는 바로 이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신앙은 내가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어온 길 위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때마다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같은 성체를 모신다.
그것은 반복이 아니라 연속성의 고백이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바오로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시간에 대한 증언이었다.
그 시간은 길고, 때로는 더디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흐름은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나는 그 이야기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나는 하느님의 역사 안에서 어떤 역할을 살아가고 있는가.
기도는 어쩌면 하느님께 무언가를 요청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분의 이야기 속에서 내 자리를 발견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하느님은 우리 삶의 작은 사건들 속에서 조용히 역사를 이어가고 계신다.
그 흐름을 알아보고, 그 길에 자신을 맡기는 것, 그것이 가톨릭 신자가 배워야 할
참된 신앙의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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