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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너 어디 있느냐”

제임스
2025-12-07 23:35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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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의 이야기는 인류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숨긴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열매를 먹은 뒤, 자신이 알몸임을 깨닫고 두려움 속에 동산 나무 사이로 숨어버린다.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첫 목소리는 꾸짖음이 아니라 질문이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은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묻지 않으신다
.
이 질문은 좌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다.
관계가 끊어진 자리에서,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에서,
하느님은 인간의 행동보다 먼저 그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부드럽게 부르신다.
 

식품과학자에게 이 질문은 마치 식품 품질의 미세한 변화가 시작될 때 들려오는 경고와도 같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온도
·수분·미생물의 작은 이상이 내부에서 조용히 변질을 일으키는 것처럼,
죄의 순간도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서 마음의 온도와 습도는 이미 변해 버린다.
너 어디 있느냐?”는 바로 그 변화를 묻는 질문이다.
이미 틀어진 마음의 방향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하느님은 먼저 찾아오신다.

아담과 하와의 대답은 변명으로 가득하다.
아담은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라 하고,
하와는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라고 한다.

이 장면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습관을 보여 준다
.
잘못의 본질보다 변명과 책임 회피가 먼저 튀어나오는 모습,
그리고 자기 안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밖으로 밖으로 원인을 떠넘기는 마음이다.

식품 안전 사고 현장에서 나는 이 장면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오염 사고가 나면 원재료 회사는 공정 문제라 하고,
공장은 장비 문제라고 하고,
관리자는 사람 탓이라고 한다.
책임이 서로에게 미루어지는 순간 오염의 근원은 더 깊이 숨어버리고 문제는 더 큰 혼란으로 번진다.
창세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죄의 본질은 단지 열매를 먹은 행위보다 그 후에 드러나는 인간의 태도, 회피와 두려움, 숨고 싶은 마음에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변명에 흔들리지 않고 그 마음의 근원, 관계가 끊어진 자리, 상처와 두려움이 시작된 지점을 바라보신다.

뱀을 향한 하느님의 선언 속에는 놀랍게도 심판만이 아니라 희망이 함께 담겨 있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악이 인간에게 상처를 남길 수는 있지만 결국 인간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는 선언이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원복음이라 불리지만,
식품과학자의 눈에는 마치 부패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발효의 신비처럼 읽힌다.


발효는 언제나 부패와 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
곡물이 삭고, 포도가 상하고, 우유가 걸쭉해지는 그 경계에서 새로운 향미가 자라난다.
초기 부패의 냄새 속에서 효모가 자라고 유산균이 동작하며 완전히 새로운 좋은 변화가 나타난다.
악의 개입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의 자리에서 하느님은 새로운 발효를 시작하신다.
구원은 타락의 한복판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 뒤에 등장하는 장면은 더 인상적이다.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부른다.
모든 산 이들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죄의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성경은 갑자기
생명을 말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다.
상처의 마지막에서 하느님은 생명을 다시 시작시킨다.

자연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많이 본다.
썩어가는 과일 속에서 씨앗은 더 단단해지고,
한 알의 밀알이 흙 속에서 사라져야 그 다음 해에 풍성한 열매를 낼 수 있다.
부패와 재생은 언제나 한 뿌리에서 일어난다.
하느님은 인간의 잘못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여전히 간직하게 하신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느님의 물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온다.

너 어디 있느냐?”

이는 꾸짖음의 질문도, 책임을 따지는 질문도 아니다.
마음의 품질이 어디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관계가 어디서 멀어졌는지,
우리의 내면에서 어떤 작은 발효가 변질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살피게 하는 영적 검사표와 같다
.

식품 안전 관리에서는 중요 관문점(critical control point)을 놓치면 문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영성도 같다.
두려움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싶어지는 순간,

숨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이 바로 그 중요한 관문이다.
그때 하느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찾으신다.
상처는 우리의 발꿈치를 물 수 있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늘 곁에서 지탱해 주신다.
그분은 부패의 자리에서도 새로운 발효를 일으키셨던 분,
상처에서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오늘도 그분은 조용히 부르신다
.
너 어디 있느냐?”
이 부르심 앞에서 숨지 않고 나아가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새로운 발효가 시작되는 자리이자
구원의 향기가 피어나는 출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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