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세상 속에서 부활의 의로움을 회복하려면
본문
오늘의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라스베가스의 불빛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다.
네온싸인 광고의 문구는 쉼 없이 속삭인다. “더 가져라, 더 누려라.”
카지노에 들어가 빠칭코 머신에 동전을 넣으면 순간적인 행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한 움큼의 동전이 쏟아지는 그 짧은 쾌감은 곧 “조금만 더”라는 속삭임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속삭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공허해지고 허무해진다.
탐욕은 우리를 끊임없이 붙잡는다.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유혹하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공허와 외로움이 기다린다.
오늘날을 풍요의 시대라지만, 사람의 영혼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재산으로 재단하는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는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의 훈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선언이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단지 죽음을 이긴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사랑의 회복이었다.
의로움이란 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삶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더 이상 소유의 노예가 아니라 사랑의 존재로 새로 태어난다.
오늘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가족 간의 대화는 줄어들고
마음의 여유는 점점 사라져 간다.
사랑의 자리는 욕망이 대신하고, 함께하는 기쁨은 경쟁으로 바뀌었다.
이때 예수님은 이런 허황된 세상 속의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다.
그분의 부활은 비움의 완성이자, 사랑의 충만함이었다.
빈 무덤은 역설적으로 충만의 상징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용서와 평화, 새 생명의 숨결이 가득했다.
그 순간, 인간의 생명은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것’으로 증명된다는 진리가 드러났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느냐?”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부활은 단지 신앙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탐욕을 내려놓고
사랑을 선택하는 조용한 결단이다.
그 결단이 쌓일 때, 우리의 일상은 부활의 빛으로 물든다.
사람의 생명은 결코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그 생명은 오직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의로움으로 피어난다.
그 부활의 의로움이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다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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