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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신비, 식탁 위의 지혜

제임스
2025-09-17 09:39 5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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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습니다.”(1티모 3,16)

초대 교회의 짧은 이 고백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와 함께하셨다는 성육신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영광 속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선택하시고, 같은 힘든 여정의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드셨습니다. 이 신비는 단순히 교리 속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삶과 식탁 위에서 펼쳐졌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루카 7,34). 오늘날의 귀에는 가벼운 조롱처럼 들리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심각한 비판이었습니다. 고대 유다 사회에서 식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습니다. 식탁은 곧 경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누구와 함께 먹고 마시느냐가 그 사람의 도덕성과 종교적 신분을 규정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정결 규정을 근거로 누구와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가를 철저히 가르며, 죄인이나 세리와의 식사를 금기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장벽을 허물고 식탁을 개방하셨습니다. 굶주린 이에게는 빵을, 외로운 이에게는 자리를, 죄인에게는 용서의 시선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성전의 높은 제대보다 오히려 낮은 식탁에서 더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식사 장면이 유난히 많이 등장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가나안의 혼인잔치, 세리 자캐오의 집,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 그리고 마지막 만찬까지모두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조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의 개방된 식탁이 초대 교회의 성찬례로 이어진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잔을 들어 이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흘릴 내 피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월절 식사의 변형이 아니라, 그분의 삶 전체를 나눔과 희생의 성소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모일 때마다 빵과 잔을 나누었습니다. 당시 공동체의 식탁은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고, 그 차이를 지우며 모두를 형제로 묶는 새로운 질서의 표징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신자들에게 성찬의 정신을 잃지 말라고 권고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제 삶의 식탁을 돌아봅니다. 바쁘게 치러낸 허둥지둥한 끼니, 휴대폰 화면과 함께한 무심한 식사에는 신비가 머물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식탁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눈앞의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셨고, 그 순간 평범한 식탁은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성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의 신비는 여전히 식탁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업적이나 대단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열어주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성찬례의 영적 의미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의 자녀는 삶의 가장 단순한 자리에서조차 하느님의 진실을 증언합니다.

    이제 저는 하루의 밥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합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고 지혜가 스며드는 작은 성소의 자리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누는 빵과 잔은, 2000년 전 예수님의 개방된 식탁과 초대 교회의 성찬례로 이어지는 신비의 연속선 위에 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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