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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진다는 것

제임스
2025-09-14 09:04 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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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소 시절, 나는 1소대 향도를 맡아 160명의 훈련병을 대표해야 했다. 하루는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4소대 조교가 부른다는 말이 들려, 황급히 달려갔다. 들어가자마자 주먹이 날아왔고, 몇 대 맞으니 입안에서 피가 흘렀다. 그제야 멈춘 조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질은 밥은 싫어하는데, 애들한테 도대체 어떻게 교육했기에 나한테 질은 밥을 주느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지시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전달한 적도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침 조회 시간에 조교는 내게 발길질을 하며 쓰러뜨리고, 발을 내 몸 위에 올려놓고는 이렇게 명령했다.

집합 상태가 맘에 안 드니, 네가 지금 받은 만큼 동기들에게 뻔대를 보여줘라!”
아마도 한 두명 본보기로 패서 정신차리게 만들어 보라는 취지였던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묵묵히 정렬만 시켰을 뿐, 동기들에게 어떠한 체벌도 가하지 않았고 우리 잘 해보자!”는 말 뿐이었다.

    훈련소 마지막 날, 분열 연습이 이어졌다. 아침부터 땡볕 아래 오후 세 시까지 모두가 지쳐 있었는데, 소대장은 나를 불러 30분 안에 완벽히 하지 못하면 네가 대표로 기합을 받으라고 말했다. 정작 그는 그늘로 걸어가 앉아 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못한 일을 단 30분 만에 해결하라는 요구가 참으로 부당했지만, 나는 동기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30분 동안 제대로 연습하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훈련이 아니라 휴식이다. 내가 대표로 벌을 받을 테니 그늘에서 쉬자. 그리고 한 번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잘 해보자
30분의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며 단결하는 시간이 되었다.

30분 후, 우리는 다시 일어나 연습에 나섰다. 동기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번 만큼은 꼭 해내자는 각오로 임했다. 그 결과, 분열은 완벽에 가까웠고 소대장과 조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돌아보면, 맞고 모욕 당하던 순간에도 내 안에는 이상한 기쁨이 있었다. 그것은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동기들을 대신 짊어진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무겁고 힘든 짐이라도 내가 대신 감내함으로써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기쁨이요, 제자의 길이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 때도 그러셨으리라. 억울하고 부당한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살리는 길, 사랑의 증거가 되었다. 나의 작은 체험은 그 십자가의 그림자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한 가지 진리를 배웠다. 십자가는 무겁지만, 사랑이 그 무게를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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