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들보
본문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드는 순간, 내 마음에도 또 하나의 빛이 비쳐 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흘러넘치는 은총”(1티모 1,14)입니다. 은총은 언제나 넘치도록 주어집니다. 마치 가득 찬 잔이 흘러내려 옆 사람의 손까지 적시듯, 내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까지 번져 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의 말씀이 귓가에 울립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옳은 소리’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남의 잘못을 쉽게 지적하곤 했습니다. 때로는 나보다 높은 상급자에게도 서슴없이 직언을 했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상황에는 여러 사정과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눈의 들보는 외면한 채, 남의 눈 속 작은 티만 찾아내며 스스로 뿌듯해 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때의 나를 꾸짖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단지 꾸짖고 끝내지 않으십니다. 내 안의 들보조차 품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 덕분에 나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내 허물이 은총으로 덮이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바람이 나를 다시 세우고, 다른 이의 작은 허물까지도 감싸 안을 힘을 줍니다.
은총은 나를 낮추고, 사랑은 그 낮아짐을 통해 남을 세워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바라보려 합니다. 넘쳐흐르는 주님의 은총에 기대어, 겸손과 사랑의 길 위에 한 걸음을 내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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