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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톨의 신비, 농민의 날을 맞이하며

제임스
5시간 13분전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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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입니다. 하루 이틀로 끝나는 일이 아니지요. 매일같이 땅을 바라보고, 흙에 손을 대고, 싹을 살피며, 벌레와 싸우고, 비와 바람을 견뎌야 합니다. 단 하루도 손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농사란 곧 끊임없는 손길의 예술, 그리고 고단함을 동반한 생명의 기도입니다.


유학생 시절, 반찬 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조그만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배추, 무, 갓, 쑥갓, 깻잎, 마늘, 고추, 토마토, 딸기, 참외…. 직접 가꾼 작물들을 수확해 식탁에 올리며 살아갔습니다. 밭농사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존의 법칙이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부딪히는 어려움 속에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땅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심정을 고백하듯, 나는 흙을 일구었습니다.


농대를 나왔기에 흙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도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정직한 응답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뿌린 만큼 거두고, 돌본 만큼 자라는 식물들 앞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일까요. 기후 변화로 인해 어렵게 지은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려 옵니다. 그들이 1년 내내 흘린 땀방울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수확의 기쁨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그 땅 위에 고여 있는 눈물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일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가 ‘농민의 날’을 제정하여 기념하는 이유는 단지 농업이라는 직업군을 기리고, 농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는 실천에서 비롯된 것 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이들이 바로 농민이며,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지켜나가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교회의 핵심 가르침인 공동선의 실현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돌보는 이들의 손길을 통해 생명은 다시 태어납니다. 농민의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땀과 기도, 기다림과 순명, 그리고 하느님과의 깊은 협력입니다.


우리는 밥 한 공기를 먹으면서 얼마나 많은 손길을 떠올리는지요. 쌀을 살 수 있도록 땀 흘려 일하신 부모님, 그 쌀로 정성껏 밥을 지어주신 어머니, 그리고 한 톨의 쌀을 위해 사계절 내내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농민들. 그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당연하면서도 신성한 일입니다.


농민의 날은 그래서 우리가 다시금 흙과 생명,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날입니다. 땅을 돌보며 생명의 원천을 길러낸 농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그 모든 생명의 신비를 가능하게 하신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날의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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