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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성지를 찾아서

제임스
2025-07-12 08:43 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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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한옥의 처마선을 바라본다.

그 지붕 아래에서 우리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죽산 성지.

조선시대, 유교는 곧 삶의 윤리였고 질서였다.

조상을 위한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효의 실천이었고, 인간됨의 도리였다. 그러나 바로 그 시대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그 제사를 거부했다. 신주를 불사르고, 하느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의 선택.

그것은 곧 세상을 향한 도전이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질문 앞에서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1839년, 기해박해. 그해, 그들의 피가 흙에 스며들었고, 

죽산은 한국 천주교 순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성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앙을 지키겠다는 고요한 외침이 머물렀던 자리,

제도를 넘어서려 했던 용기가 뿌리내린 땅.

오늘날의 교회는 부모님을 위한 제사도, 연미사도 허락한다.

시대는 달라졌고, 신앙과 문화는 공존을 택했다.

하지만 그 시절, 윤지충과 권상연의 선택은 날 선 갈등이었다.

하늘을 향한 충성과 땅의 도리를 저울질해야 했던 그들.

그들은 결국 하늘을 선택했다.

순교자 기념비 앞에 잠시 머문다.

거기 새겨진 이름들이 바람을 가르며 속삭인다.

“우리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예수님의 희생과 순교자들의 모습을 기억해 본다.

이른 아침, 다른 이들의 발걸음은 아직 머물지 않았다.

묵상길을 천천히 오르며,

그날,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등 뒤로 햇살이 퍼지고,

풀밭 사이에서, 네잎 클로버를 주어 모으며

봉우리 멤버들의 행운을 빌어 본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기도,

순례의 의미,

그리고 작은 행운을 비는 마음.

죽산 성지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는 한 시대를 흔든 선택이,

뿌리 깊은 믿음이,

그리고 피보다 붉은 사랑이

아직도 숨 쉬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기도 아닌 기도를 바쳤다.

살아 있는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언제나 그분을 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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