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사랑, 가장 아름다운 사랑
본문
어제저녁은 우리 구역의 미사가 있는 날이었다. 구역미사로서는 마지막이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미사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둘러앉아 그간의 일상을 나누며 웃고 공감했다. 노원구에서 펼쳐지는 행사들. 커피 축제, 맥주 축제, 철쭉 꽃축제, 수락산 숲속의 ‘휴’ 참가 신청에 관한 이야기까지—정겨운 말들 속에 자연스레 마음이 열리고, 미사는 그렇게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 들려주신 한 말씀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자동차를 몰다 보면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욕을 하고 화를 내기보다는, ‘저 사람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며 축복해보세요. 놀랍게도 그렇게 하면 화가 사라질 겁니다."
순간, ‘아, 신앙이란 바로 그런 태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상처를 많이 받았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처를 준 사람은 멀리 있지 않다.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남편일 수도 있으며, 가장 사랑하는 자식일 수도 있다.
가까울수록 더 깊이 스며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상처가 되곤 한다.
그렇게 풀지 못한 마음은 미움이 되고, 미움은 곧 마음의 병이 된다.
그리고 그 병은 우리 안에서 ‘원수’라는 이름으로 자라난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무도 어렵지만, 너무도 분명한 말씀이다.
미움을 사랑으로 정복하라는 하느님의 간곡한 초대.
하느님 아버지께는 따로 원수도, 박해자도 없다.
그분은 선인과 악인을 가르지 않으신다.
의로운 이나 불의한 이나 모두 그분의 자녀이며, 모두가 사랑받아야 할 존재다.
그렇다면 ‘원수’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그 원수를 만든 건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나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에, 상처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니 상처가 생겼다면, 너무 오래 품고 있지 않아야 한다.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상처를 준 그 사람이, 그 일이,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면 한결 수월해진다.
무엇보다도, 욕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안전을 빌고, 축복해 준다면, 우리는 그 미움의 고리를 스스로 끊을 수 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겐 원수가 되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상처였다는 사실—그 진실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청한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를 사랑해야 할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소서.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 감정과 처지에 머무르지 않고,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축복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이 사랑합시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깁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원수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 역시 ‘원수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