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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0.3)의 독서 말씀] 귀로 듣던 하느님을 눈으로 뵙기까지 : 욥기 (42,1-3.5-6.12-17)

제임스
2026-10-02 22:26 2 0

본문

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사람은 예전과 똑같을 수 있을까.
욥은 재산과 자녀들을 잃고 자신의 몸마저 병들었다.
친구들은 위로하기보다 그의 잘못을 찾아내려 했다.
욥은 끊임없이 물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습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욥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하느님께서는 그 고통의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
대신 욥이 깨닫는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욥이 질문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따지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긴 여정의 끝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도 젊었을 때에는 많은 일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오래 살아갈수록 끝내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왜 좋은 사람이 먼저 떠나는지,
왜 어떤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오는지,
왜 간절한 기도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욥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기의 핵심은 어쩌면 이 한 문장에 있는지도 모른다.
욥이 얻은 것은 고통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아니었다.
설명 대신 하느님을 만났다.
고통을 겪기 전에도 욥은 하느님을 알고 있었고 긴 고통을 지나면서 그의 신앙은 달라졌다.
하느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에 믿는 신앙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하느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깊어진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부모와 교회로부터 하느님에 대해 듣고 배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기쁨과 고통,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을 통과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그때 ‘귀로 들은 신앙’이 조금씩 ‘눈으로 뵙는 신앙’으로 바뀌는 것일 것이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에서 욥은 다시 큰 복을 받는다.
재산이 늘어나고 새로운 자녀들을 얻으며 장수를 누린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고난을 잘 참았더니 하느님께서 더 크게 보상해 주셨다.”
라고만 읽을 수는 없다.
새로운 자녀들이 먼저 죽은 자녀들을 대신할 수 없고,
많은 재산도 과거의 상실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못한다.
회복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지닌 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삶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다시 웃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은 것은 아니다.
실패한 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과거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상처를 안고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일하며,
다시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회복일 것이다.
욥기의 처음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긴 고통을 지나 마지막에 욥은 고백한다.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하느님 그분에게 도달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하느님께서 무엇을 해 주시는가에만 마음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얻음과 잃음, 기쁨과 슬픔의 세월을 지나면서
조금씩 하느님 그분을 알아가고 있는가.
욥기는 모든 고통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믿음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 하느님께 맡길 수 있을 때 믿음은 더 깊어진다.
욥이 마지막에 얻은 가장 큰 것은 재산이나 장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귀로만 듣던 하느님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만나게 된 것.
어쩌면 그것이 욥의 긴 고통이 남긴 가장 깊은 변화이며,
우리도 삶의 여정 끝에서 고백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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