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0.2)의 독서 말씀] 누가 내 앞에서 걷고 있는가 : 탈출기 (23,20-23)
제임스
2026-10-01 22:22
2
0
본문
낯선 길을 걸을 때 앞에서 길을 잘 아는 사람이 걸어가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산길에서도 갈림길이 나오거나 길이 험해질수록 앞서가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길을 모두 알고 있어서 안심하는 것이 아니다.
길을 아는 사람이 앞에 있기 때문에 안심하는 것이다.
오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이 말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앞에’라는 말이다.
천사를 백성들보다 먼저 가게 하시고 목적지도 “내가 마련한 곳”이라고 말씀하신다.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길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이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앞서가려고 한다.
내가 계획하고 판단하며,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마음이 놓인다.
젊을 때에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부분의 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살아갈수록 내 계획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새로운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묻는다.
“왜 내가 생각했던 길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오늘 말씀은 오히려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네가 원하는 길인가?”보다 “누가 네 앞에서 걷고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동시에 말씀하신다.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천사가 앞서 간다고 해서 백성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들어야 하고, 분별해야 하며, 따라가야 한다.
신앙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시는 분의 뜻을 들으면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무엇을 해 주십시오’ 하며 내 뜻을 전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기도도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주님, 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들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청하는 기도에서 듣는 기도로 옮겨 가는 것이다.
또 하느님께서는 천사가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라고 말씀하신다.
지켜 주신다는 것이 언제나 편안한 길만 걷게 해 주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도 광야와 장애물이 있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보호란 어려움을 모두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목적지를 잃지 않도록 함께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아도 계획하지 않았던 길을 참 많이 걸어왔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그 길이 새로운 만남과 기회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일을 쉽게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내가 혼자 걸어온 것만은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따라오시기를 바라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내가 하느님을 따라가려고 살아왔는가?
내가 앞서면 하느님께 내 계획을 이루어 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앞서시면 나는 묻게 된다.
“주님, 오늘 제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합니까?”
인생의 모든 길을 미리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약속한다.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데려갈 것이다.”
신앙은 미래의 길을 모두 알고 걷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시는 분이 계심을 믿고 오늘 내게 주어진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일 것이다.
길을 모두 아는 것보다, 앞서 가시는 분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되는 믿음의 길이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