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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9.28) 의 독서 말씀] 까닭 없이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 욥기 (1,6-22) .

제임스
2026-09-27 21:14 4 0

본문

사람의 믿음이 언제 가장 흔들릴까.
기도했는데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착하게 살아왔는데 뜻밖의 고통이 찾아올 때가 아닐까.
그때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생긴다.
“하느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욥은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탄은 욥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이 한마디가 오늘의 독서 말씀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욥이 하느님을 믿는 것은 재산도 많고 자녀들도 있으며
모든 일이 잘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에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겠느냐는 도전이다.
이 질문은 나에게도 불편하게 다가온다. 나는 왜 하느님을 믿는가.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인가.
가족을 지켜 주시고 하는 일이 잘되게 해 주시기를 기대하기 때문인가.
물론 우리는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동안만 하느님을 믿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일까 아니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일까.
욥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 한꺼번에 닥친다.
소와 나귀를 잃고, 양 떼와 낙타를 잃고, 머슴들을 잃는다.
그리고 가장 견디기 어려운 소식, 자녀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 가지 슬픔을 받아들일 시간조차 없이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욥은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는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는다.
성경은 욥의 믿음을 말하면서 그의 슬픔을 감추지 않는 점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슬프면 울 수 있고, 이해되지 않으면 질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욥은 이후 하느님께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고통을 토해 낸다.
그러므로 신앙은 고통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욥은 땅에 엎드려 말한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 가리라.”
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재산을 얻고, 사람을 만나며, 지식과 명예를 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자신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바로 앞서 코헬렛의 말씀에서 읽었던 구절도 떠오른다.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욥의 고백도 같은 자리로 우리를 데려간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욥기의 말씀을 읽으며 누군가 큰 고통을 당했을 때
“주님께서 주셨다가 가져가신 것이다”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는 말보다
먼저 함께 아파하고 곁에 있어 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욥기를 통해 ‘착하면 복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공식으로
인간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오늘의 말씀은 고통의 이유를 모두 설명해 주기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느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사탄이 던진 질문,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에 대한 답일 것이다.
젊을 때의 신앙에는 청하는 것이 많았다면,
살아갈수록 신앙도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이것을 주십시오”라는 기도에서
“아무것도 손에 남지 않더라도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이다.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하느님과의 관계는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믿음의 가장 깊은 자리는 모든 일이 잘될 때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사랑하는가?
모든 것이 잘될 때에는 이 둘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언가를 잃었을 때 비로소 그 차이가 드러날 수 있다.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어쩌면 ‘까닭 없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욥기가 우리에게 보여 주려는 믿음의 가장 깊은 자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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