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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9.27)의 제1독서 말씀] 하느님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방향을 물으신다 : 에제키엘 (18,25-28)

제임스
2026-09-26 21:35 3 0

본문

사람은 일이 잘못되면 먼저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나름대로 잘 살아왔는데 왜 이런 결과를 받아야 하는가?”
그러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하느님께도 질문하게 된다.
“하느님은 정말 공평하신가?”
오늘 에제키엘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도 똑같이 말한다.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 하느님의 대답은 뜻밖에 단호하다.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이 말씀 앞에서는 쉽게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기 어렵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과거의 공로나 실패만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지금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물으신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먼저 의인이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상당히 엄중한 말씀이다.
과거에 아무리 잘 살았어도 그것이 오늘의 잘못을 덮어 주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봉사를 많이 했으며,
좋은 일을 해 왔다고 해서 오늘의 삶까지 저절로 의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의로움은 오늘의 삶을 보장해 주는 자격증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는 정반대의 말씀이 나온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여기에는 놀라운 희망이 있다.
과거에 아무리 잘못 살았더라도
그 과거가 한 사람의 미래를 영원히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 말씀의 긴장이 있는 것 같다.
의인도 안심할 수 없고, 악인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정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계산법과 다르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행동을 합산하여 사람을 평가한다.
“저 사람은 평생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좋은 사람이다.”
또는 한 번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기도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그렇게 고정된 존재로 바라보지 않으신다.
의인에게는 지금도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책임을 물으시고,
죄인에게는 지금이라도 돌아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신다.
그래서 하느님의 정의는 엄격하면서도 자비롭다.
엄격한 이유는 과거의 공적으로 오늘의 잘못을 변명할 수 없기 때문이고,
자비로운 이유는 과거의 죄 때문에 오늘의 회개가 거부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과 자비가 함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 ‘돌아선다.’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지 않으면 방향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후회하면서 같은 길을 계속 걷는다면
아직 돌아선 것은 아니다.
회개는 과거를 후회하는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하고, 잘못된 관계라면 바로잡으며,
욕심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했다면 다시 공정과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회개는 아프지만 동시에 희망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쉽게 바뀌겠는가”라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인간을 그렇게 단정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사람은 돌아설 수 있다.
오래된 미움을 내려놓을 수도 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가볍게 여기시지는 않지만,
그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가두게 하지도 않으신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느껴지는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의 신비가 아닐까.

나는 과거에 잘 살아왔다는 이유로 지금의 나를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로 과거의 잘못 때문에 이제는 달라질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에제키엘의 말씀은 두 생각 모두를 흔들어 놓는다.

과거의 선행에 기대어 안심하지도 말고, 과거의 죄악 때문에 절망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오늘 나에게 물으시는 것은 단순하다.

“지금 너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어제 의인이었다 해도 오늘 불의를 향해 걷고 있다면 돌아서야 한다.

어제 죄인이었다 해도 오늘 정의를 향해 돌아선다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엄중하면서도 희망적이다.

하느님의 정의는 나를 안주하지 못하게 하고,
하느님의 자비는 나를 절망하지 못하게 한다.

그 두 말씀 사이에서 나는 다시 방향을 살펴야 하며, 잘못된 길임을 깨달았다면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완벽했던 과거보다, 오늘 다시 당신을 향해 돌아서는 나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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