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말씀을 먹는다는 것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내일의 독서 말씀] 말씀을 먹는다는 것

제임스
11시간 23분전 2 0

본문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식탁 위에 놓여 있기만 해서는 내 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음식에 관한 책을 읽고 영양성분을 아무리 자세히 알고 있어도 그것만으로 배가 부르지는 않는다.
음식은 입으로 받아먹어야 한다. 먹고 삼킨 뒤 위와 장을 거쳐 소화되고 흡수되어야 비로소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에제키엘서(2,8─3,4)에서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특별한 명령을 내리신다.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그리고 에제키엘에게 두루마리를 주신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내용이 뜻밖이다.
축복과 위로와 기쁨이 아니라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었다.
그런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신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이다.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힌 말씀이 어떻게 꿀처럼 달 수 있었을까?
아마도 말씀의 내용이 달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성경을 읽다 보면 듣기 좋은 말씀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용서하여라.” “가진 것을 나누어라.”
이런 말씀은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나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실제로 용서하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을 때 먼저 화해하라고 하면
그 말씀은 쉽게 삼켜지지 않는다.
내가 애써 모은 것을 어려운 사람과 나누라고 하면 말씀은 때로 쓴 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아 본 뒤에는 다른 맛을 느끼게 된다.
용서하기 전에는 마음이 쓰렸는데
용서하고 나니 평안이 찾아온다.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에는 자존심이 상했는데,
그 말을 하고 나니 막혔던 관계가 풀린다.
나누기 전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는 오히려 마음이 풍성해진다.
처음에는 쓴 말씀인데 살아 보니 달다.
에제키엘이 맛본 꿀맛이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식품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먹었다’는 것과 ‘흡수되었다’는 것을 구별한다.
좋은 영양소를 섭취했다고 해서 모두 우리 몸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화되고 흡수되어 대사 과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생명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
말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을 읽었다고 해서 말씀이 곧바로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읽은 말씀이 머리에 머물 수 있다.
머리로 이해한 말씀이 입에서만 맴돌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훌륭하게 설명하면서 정작 내 삶에서는 실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에게 단순히 “두루마리를 읽어라.”라고 하지 않으셨다.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라고 하셨다.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배 속까지 들어오라는 것이다.
말씀이 생각을 넘어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어느 순간 나와 구별되지 않는다.
밥 한 그릇이 소화되고 흡수되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된다.
말씀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라는 말씀을 먹었으면 내 행동에서 사랑이 나타나고,
용서하라는 말씀을 먹었으면 내 관계에서 용서가 나타나며,
섬기라는 말씀을 먹었으면 내 손과 발에서 섬김이 나타나야 한다.
그때 비로소 말씀은 내 안에서 ‘소화된 말씀’이 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먹고, 그 다음에 전하라고 하신다.
내가 먹어 보지도 않은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맛있다고 권하기 어렵듯이,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천주교서울대교구 cpbc플러스 갤러리189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