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말씀] 늦어지는 듯해도 기다려라
본문
살다 보면 하느님께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왜 저런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편법을 쓰는 사람은 오히려 성공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의 몫까지 빼앗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질문이 올라온다.
“하느님께서는 정말 보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바쿡 예언자(1,12─2,4)도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당시 바빌론은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주변 민족들을 무자비하게 정복하고 있었다.
하바쿡은 그 모습을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 비유한다.
힘없는 사람들을 물고기처럼 그물로 끌어 올리고서는 자신이 가진 힘을 자랑한다.
심지어 자신을 성공하게 한 그물에 제물을 바치듯 자신의 힘과 능력을 숭배한다.
그래서 하바쿡은 하느님께 따져 묻는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이를 집어삼켜도 잠자코 계십니까?”
이 질문은 오늘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직장에서도 능력보다 줄을 잘 서는 사람이 먼저 인정받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고,
정직하게 사업하는 사람보다 편법을 쓰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공동체 안에서도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더 많은 박수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바쿡처럼 묻게 된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데 하바쿡의 위대한 점은 질문을 던진 뒤
하느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내 초소에 서서, 성벽 위에 자리 잡고서 살펴보리라.”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는 답이 없다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믿음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벽 위에 올라가 하느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대답이 들려온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다리는 것보다 당장 결과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씨앗을 심었다고 다음 날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땅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씨앗은 껍질을 깨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시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하루와 한 달, 몇 년을 바라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긴 시간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신다.
그래서 당장은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마지막 모습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젊었을 때에는 억울했던 일도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다른 길을 열어 주기도 하고,
당시에는 손해라고 생각했던 정직한 선택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신뢰라는 더 큰 자산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마지막 한마디가 더욱 마음에 남는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신앙인은 모든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늦어질 때,
정직하게 살았는데 손해를 볼 때,
선하게 살아도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는 하바쿡처럼 초소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결과가 늦어진다고 해서 나는 옳은 길을 포기할 것인가?”
하느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며, 기다림은 버림받았다는 뜻도 아니다.
뿌린 씨앗이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생명을 준비하듯,
하느님의 뜻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바쿡의 말씀은 조급한 우리에게 이렇게 들려온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기다려라.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도 성실하여라.”
어쩌면 믿음이란 기적을 보는 능력보다, 아직 기적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는 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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