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상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치유
제임스
2026-08-0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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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병원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는 의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약만 먹으면 낫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의사는 말한다.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약만 먹으면 낫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의사는 말한다.
"병이 이미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말은 듣기 싫지만, 사실 그 순간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약도 소용이 없고, 수술도 시작될 수 없다.
아픈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회복의 첫걸음인 것이다.
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약도 소용이 없고, 수술도 시작될 수 없다.
아픈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회복의 첫걸음인 것이다.
예레미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도 이와 같았다.
"너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너의 부상은 심하다."
참으로 냉정한 말씀이다. 더구나 그 상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죄악과 허물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하신다.
오늘날이라면 누구도 듣기 싫어할 말이다.
우리는 실패의 원인을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쉽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하신다.
죄악과 허물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하신다.
오늘날이라면 누구도 듣기 싫어할 말이다.
우리는 실패의 원인을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쉽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심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고 하신다.
절망의 말씀까지도 기록하게 하신 것은
훗날 그것이 희망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통의 순간만 기억하지만, 하느님은 그 이후의 회복까지 바라보고 계신다.
절망의 말씀까지도 기록하게 하신 것은
훗날 그것이 희망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통의 순간만 기억하지만, 하느님은 그 이후의 회복까지 바라보고 계신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경기 탓, 사람 탓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무리한 욕심과 준비 부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공부하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결국 새로운 삶을 일구어 냈다.
그는 처음에는 경기 탓, 사람 탓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무리한 욕심과 준비 부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공부하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결국 새로운 삶을 일구어 냈다.
만약 끝까지 남만 원망했다면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도 같은 길을 열어 주신다.
"내가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겠다."
무너졌던 성읍이 다시 세워지고, 감사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백성은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었다.
백성은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었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 마치 큰 산불이 지나간 숲을 떠올리게 된다.
불길이 지나간 직후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검게 탄 나무와 메마른 땅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재 속에서 가장 먼저 새싹이 올라온다.
산은 이전보다 더 푸르게 살아난다.
자연은 죽음을 품고 다시 생명을 준비한다.
검게 탄 나무와 메마른 땅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재 속에서 가장 먼저 새싹이 올라온다.
산은 이전보다 더 푸르게 살아난다.
자연은 죽음을 품고 다시 생명을 준비한다.
하느님의 회복도 이와 같다.
우리가 보기에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하느님은 다시 시작을 준비하신다.
특히 마지막 말씀이 마음을 울린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결국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읍의 재건만이 아니다.
건물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멀어졌던 백성을 다시 품으시는 것이 하느님의 가장 큰 목적이다.
건물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멀어졌던 백성을 다시 품으시는 것이 하느님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식품을 연구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한다.
발효가 잘못되면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온도 하나, 염도 하나가 어긋나 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면
제품은 상품성을 잃는다.
그러나 원인을 정확히 찾아 조건을 바로잡으면
미생물은 다시 건강하게 자라고, 향과 맛도 되살아난다.
온도 하나, 염도 하나가 어긋나 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면
제품은 상품성을 잃는다.
그러나 원인을 정확히 찾아 조건을 바로잡으면
미생물은 다시 건강하게 자라고, 향과 맛도 되살아난다.
문제를 덮어 두는 것은 해결이 아니다.
원인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때 비로소 좋은 발효가 시작된다.
원인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때 비로소 좋은 발효가 시작된다.
신앙도 다르지 않다.
죄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을 정죄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치유를 받아들이기 위한 문을 여는 일이다.
하느님의 치유를 받아들이기 위한 문을 여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
어떤 상처는 다른 사람이 주었고,
어떤 상처는 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생겼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아픔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고, 그보다 더 큰 회복을 약속하신다.
어떤 상처는 다른 사람이 주었고,
어떤 상처는 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생겼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아픔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고, 그보다 더 큰 회복을 약속하신다.
그래서 믿음이란 상처가 없는 삶이 아니라,
상처 너머에서 회복을 준비하시는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삶이다.
상처 너머에서 회복을 준비하시는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삶이다.
오늘 하루, 내 마음속 아픈 자리 하나를 하느님 앞에 솔직히 내어놓아 보자.
그곳이야말로 감사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가장 아름다운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곳이야말로 감사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가장 아름다운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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