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옳은 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
본문
예레미야는 성전과 도성을 향해 경고의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의 분노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상황에서도
예레미야는 말을 바꾸거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한다.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나를 처리하십시오.”
그러나 이어서 분명히 밝힌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안전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죽음을 자청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언의 목적은 사람을 벌주는 데 있지 않았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게 하는 데 있었다.
진실한 충고는 당장은 미움을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만난다.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일을 보았을 때 침묵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괜한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 모른 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진실을 말할 것인가?
물론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상처 주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용기만큼 겸손도 필요하다.
내 감정이나 자존심이 아니라
상대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해야 한다.
오늘 말씀에는 또 한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아히캄은 예레미야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도왔다.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처럼 앞에 나서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받을 때
그 곁에 서 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억울한 사람의 말을 들어 주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며,
다수의 분노 속에서도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 역시 믿음의 실천이다.
신앙인은 언제나 환영받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듣기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하고,
때로는 그런 진실을 말한 사람의 편에 서야 한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맡기면서도
끝까지 사람들의 회개를 바랐다.
그의 용기는 공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주님, 사람들의 시선보다 당신의 뜻을 먼저 바라보게 하시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는 용기를 주시며,
억울한 이의 곁에 서야 할 때에는 침묵하지 않게 하소서.
옳은 말은 때로 우리를 외롭게 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전한 진실은 결국 누군가를 살리고 공동체를 바르게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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