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이라는 이름 앞에서] 장례미사를 보면서
본문
주변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평소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병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백혈병은 대부분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서 혈액을 만드는 골수의 세포에 유전자 변이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방사선 노출이나 일부 화학물질, 유전적 요인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이 크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모든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다행히도 의학의 발전으로 백혈병 치료 성적은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유전자 적합성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만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을 수 있다면
회복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집니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은 하루하루 간절한 마음으로 기증자를 기다립니다.
세상 어디엔가 있을 이름 모를 한 사람과의 만남이 생명을 이어주는 희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증 의사를 밝혔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실제 기증 시점이 다가오면
여러 이유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에 행해질 시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생명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그 소식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는 유전자 적합성이 확인된 네 명의 기증 가능자가
모두 기증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습니다.
만일 그 환자가 내 가족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따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떠올리게 됩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사람들,
치료비 마련을 위해 성금을 보내는 사람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아픈 이웃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했기에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장례미사에 참석하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무도 익숙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받아들이고,
내 시간과 정성, 때로는 내 몸까지 내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증을 결심한 분들,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
기도로 함께해 주신 분들,
그 모든 분들의 선의가 있었기에 누군가는 희망을 품고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백혈병이라는 병을 생각할 때마다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신비롭고 연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건강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매일 감사해야 할 선물이라는 사실도 다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의 원인만을 따지기보다 오늘 주어진 건강에 감사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서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돌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건강할 때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아플 때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자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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