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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말씀] 바오로 사도가 알려주는 선교의 방법

제임스
2026-05-13 07:13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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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장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는 바오로의 선교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장면이다.
지금까지 그는 주로 회당에서 유다인들에게 성경을 근거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그곳은 철학과 예술, 사상과 종교가 가득한 도시였다.

바오로는 그들에게 유다 율법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문화와 사유의 언어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도시를 돌아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을 발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그분을 내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바오로는 먼저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심을 인정하고,

그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갈망을 읽어 낸다.

이는 신앙의 깊은 태도를 보여준다.
참된 선포는 상대를 무시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고,

상대 안에 이미 심어져 있는 진리의 씨앗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바오로는 이어서 말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리스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이것은 복음이 특정 민족의 언어 안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문화와 역사 속에서도

이미 당신의 흔적을 남겨 두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결국 회개와 부활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갈린다.

어떤 이는 비웃고

어떤 이는 더 듣고 싶어 하며

어떤 이는 믿게 된다

이 모습은 인간의 자유를 잘 보여준다.
복음은 강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 안에서 응답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의 알지 못하는 신도 어쩌면 비슷했다.
그들은 이미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바오로는 바로 그 갈망의 빈자리를 읽어낸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하느님을 모른다고 말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허전함과 의미를 찾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풍요로워질수록

오히려 인간 내면의 공허함은 더 커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바오로의 태도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신앙은 먼저 상대를 판단하거나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이미 품고 있는 갈망,

이미 알고 있는 언어,

이미 마음속에 존재하는 질문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하나의 빈 제단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갈망,

설명되지 않는 그리움,

끝내 채워지지 않는 어떤 목마름 말이다.

그리고 신앙은, 그 이름 모를 갈망에 조용히 이름을 붙여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성전보다 인간의 갈망 속에서 먼저 기다리고 계신다.

그래서 참된 선포는 큰 소리로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알지 못하는 목마름을 함께 발견해 주는 데서 시작된다.

바오로는 아테네에서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그 이름 모를 갈망을 비추어 주는 작은 등불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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