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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말씀] 하느님은 누구를 받아들이시는가

제임스
2026-05-07 05:36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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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의 이 장면은 초대 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율법과 할례에 대한 논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었다.
하느님은 과연 누구를 받아들이시는가?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내려 주셨고,
그들의 믿음을 받아들이셨다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었다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나 외적인 조건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꾸 경계를 만들고 구분하려 한다.
누가 더 옳은지, 누가 더 자격이 있는지, 누가 더 신앙적인지를 판단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사람을 받아들이신다.
평소 성경을 읽으며 가졌던 의문 가운데 하나가 있었다.
왜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율법학자나 철학자, 학식 높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제자를 부르지 않으셨을까?
왜 갈릴래아 호숫가의 어부였던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
물론 베드로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뜨겁고 용감했으며 행동력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보신 것은
그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믿음의 자세였다는 점이다.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왜 그들에게 지우려 합니까?”
이 말은 단순히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지,
사람을 짓누르는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초대 교회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었다.
사실 인간은 신앙 안에서도 끊임없이 기준을 만들고 싶어 한다.
어떤 형식을 지켜야 하고,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일정한 틀 안에 들어와야만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말 속에는 놀라운 겸손이 담겨 있다.
유다인들이 이방인을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 역시 똑같이 은총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고백이다.
겸손하면서도 진정어린 심정의 고백이다
이어지는 야고보의 말도 깊은 지혜를 담고 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불필요한 어려움을 주지 말자고 한다.
다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한다.
이것은 본질을 지키면서도 사람을 품으려는 교회의 지혜였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된다.
신앙은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
하느님께 가까이 가도록 돕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역시 서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곳이 아니라,
은총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여야 한다.
결국 초대 교회가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구원은 인간의 자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내미신 은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은총은
유다인과 이방인,
과거와 현재,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모든 경계를 넘어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은총 앞에서 자신을 열어 놓을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베드로가 선택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은총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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