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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늙은 나무를 돌보는 법

제임스
2025-12-28 00:03 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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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눈으로 읽는 성가정의 메시지

 

나자렛의 성가정 주일에 교회는 왜 굳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일까.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장수하고, 어머니를 편안하게 하는 이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다.”
이 말씀이 단지 도덕 교훈이나 가족 윤리에 머물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은 관계가 생명을 어떻게 지속시키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일수록, 오래된 나무일수록 더 손이 간다는 사실을.
젊은 묘목은 거름만 잘 주면 쑥쑥 자라지만,
오래된 나무는 가지를 다듬어 주어야 하고,
뿌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흙을 보태 주어야 하며,
병이 들지 않도록 늘 살펴야 한다.

집회서가 말하는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라는 권고는
어쩌면 바로 이 늙은 나무를 대하는 농부의 태도와 닮아 있다.
생산성만 따진다면, 수확량만 생각한다면
늙은 나무는 언제든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농부는 안다.
그 나무가 지나온 세월이 밭 전체의 기억이라는 것을,
그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자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업신여기지 마라.”
이 구절은 농업인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들린다.
땅이 예전 같지 않다고, 나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라.”

농사는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비가 오지 않는 해도 있고,
서리가 늦게 내려 작물이 상하는 해도 있다.
그렇다고 땅을 탓하며 버릴 수는 없다.
농부는 땅이 말을 잃은 듯 보일 때도
그 안에서 여전히 생명이 준비되고 있음을 믿고 기다린다.
 

집회서는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는다.
농업의 언어로 말하자면,
땅을 배반하지 않은 농부의 수고는 언젠가 반드시 흔적으로 남는다는 뜻이다.
바로 다음 해의 수확이 아닐 수도 있고,
자식 세대의 밭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은, 그리고 하느님의 질서는
결코 그 수고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화려한 가족이 아니었다.
노동으로 하루를 버텨야 했고,
부족함 속에서 서로를 의지해야 했던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런 가정을 교회가 오늘의 본보기로 제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족은 효율의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을 이어 주는 토양이기 때문이다.

농부에게 밭은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다.
그 밭은 조상들의 땀과 실패, 기다림이 켜켜이 쌓인 자리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단지 보호자나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내 삶이 뿌리내릴 수 있게 해 준 시간의 토양이다.
 

나자렛의 성가정 주일에 이 말씀이 다시 울려 퍼지는 이유는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속도와 효율을 앞세우는 세상 속에서
늙어 가는 관계를 돌보는 법을 다시 배우라는 초대,
그리고 생명은 언제나 보살핌 속에서 이어진다는 사실을
농부의 마음으로 다시 기억하라는 초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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