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만져본 생명, 함께 나누는 기쁨
제임스
2025-12-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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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 1서 1장 1-4절은 매우 독특한 언어로 시작된다.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말씀은 추상적인 신앙 고백이 아니다. 감각의 언어, 몸의 언어다. 귀와 눈, 그리고 손. 신앙이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선언으로 이 서간은 문을 연다.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말씀은 추상적인 신앙 고백이 아니다. 감각의 언어, 몸의 언어다. 귀와 눈, 그리고 손. 신앙이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선언으로 이 서간은 문을 연다.
우리는 먹을거리를 말할 때도 냄새를 맡고, 색을 보고, 질감을 만지고, 맛을 본 뒤에야 비로소 “이 음식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분석표나 성분표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은 언제나 감각이다. 음식은 머리로 이해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받아들여진다.
분석표나 성분표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은 언제나 감각이다. 음식은 머리로 이해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받아들여진다.
농사를 지으며 뿌리는 씨앗 역시 책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흙을 만져 보고, 수분을 느끼고, 기온과 햇빛을 몸으로 겪으며 비로소 생명은 자란다.
농부는 땅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는다.
손으로 흙을 쥐고, 씨앗을 묻고, 싹이 트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한다. 생명은 늘 가까이서, 손이 닿는 거리에서만 분명해진다.
흙을 만져 보고, 수분을 느끼고, 기온과 햇빛을 몸으로 겪으며 비로소 생명은 자란다.
농부는 땅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는다.
손으로 흙을 쥐고, 씨앗을 묻고, 싹이 트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한다. 생명은 늘 가까이서, 손이 닿는 거리에서만 분명해진다.
요한이 말하는 “생명의 말씀”도 그러하다. 그는 그 생명을 보았고, 들었고, 만져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주장이라기보다, “이 빵은 내가 직접 반죽했고, 이 포도주는 내가 직접 맛보았다”라고 말하는 농부나 장인의 고백에 가깝다.
삶으로 겪은 것을 삶의 언어로 전하는 증언이다.
식품과학에서 ‘만져본다’는 것은 단순한 촉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직접 만져본 식품은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쉽게 버릴 수도 없다.
내가 손댄 만큼, 내가 경험한 만큼 그 결과에 대해 책임 있게 말할 수 있다.
요한의 증언도 그렇다. 그는 남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겪은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이 문장은 마치 농부가 수확한 곡식을 혼자 쌓아 두지 않고 이웃과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농업의 목적이 혼자 배부르기 위함이 아니듯, 신앙의 증언도 혼자 간직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누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
그래서 요한은 ‘교리’를 말하지 않고 ‘친교’를 말한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함께 먹는 밥상, 함께 나누는 빵, 함께 마시는 물이 만들어 내는 관계처럼, 신앙도 혼자 소유하는 지식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깊어지는 생명이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함께 먹는 밥상, 함께 나누는 빵, 함께 마시는 물이 만들어 내는 관계처럼, 신앙도 혼자 소유하는 지식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깊어지는 생명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혼자 먹을 때는 밥맛이 나지 않지만, 여럿이 함께 먹으면 밥맛이 살아난다.
술도 마찬가지다. 혼자 마시는 술은 괴로움을 달래는 데 그치지만, 정든 사람들과 나누는 술은 기쁨과 정을 함께 키운다.
식품의 성분은 똑같아도, 기쁨의 농도는 전혀 다르다.
요한이 말하는 “기쁨이 충만해지도록”이라는 표현은, 수확의 기쁨이 공동체 안에서 훨씬 더 커지는 모습과 닮아 있다.
술도 마찬가지다. 혼자 마시는 술은 괴로움을 달래는 데 그치지만, 정든 사람들과 나누는 술은 기쁨과 정을 함께 키운다.
식품의 성분은 똑같아도, 기쁨의 농도는 전혀 다르다.
요한이 말하는 “기쁨이 충만해지도록”이라는 표현은, 수확의 기쁨이 공동체 안에서 훨씬 더 커지는 모습과 닮아 있다.
농업과 식품의 세계에서 생명은 늘 순환 속에 있다.
씨앗은 땅으로 돌아가고, 수확은 다시 다음 생명을 준비한다. 요한의 증언도 그러하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났고, 이제 그 생명은 공동체 안에서 다시 순환된다.
보고, 듣고, 만지고, 나누며 살아 있는 말씀으로 계속 자라난다.
요한 1서의 시작은 그래서 선언이라기보다 초대에 가깝다.
“우리가 만져본 생명을, 이제 너희도 함께 경험하라”는 초대.
말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하고 소화해 내는 신앙으로 들어오라는 부름이다.
식품과 농업이 그러하듯, 생명은 멀리서 설명할 때보다 가까이서 만질 때 더 분명해진다.
요한이 증언한 생명도 바로 그런 생명이었다.
요한이 증언한 생명도 바로 그런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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