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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

제임스
2025-12-25 08:25 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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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예언(91-6)을 식품과학자의 눈으로 읽다

 

식품을 연구하다 보면 어둠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떠오른다.
불이 꺼진 실험실, 아직 반응이 시작되지 않은 배양기, 효소가 잠들어 있는 낮은 온도의 저장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이미 모든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본다는 이사야의 말은,
그래서 나에게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반응의 시작점, 임계점을 넘는 순간에 대한 선언처럼 들린다.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빛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온도가 맞춰지고, 수분이 공급되고, 미생물이 깨어나는 순간.
그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생명의 흐름이 드러난다.


암흑의 땅에 빛이 비친다는 말은
, 결국 조건이 맞춰졌음을 의미한다.
준비된 어둠은 실패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기쁨을
수확에 비유한 이사야의 언어에서도 수확의 기쁨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씨를 뿌리고, 비를 기다리고, 잡초를 뽑고, 병해를 견디는 시간의 총합이다.
발효 식품도 마찬가지다. 며칠, 때로는 몇 달을 기다린 끝에야 비로소 맛이 열린다.
너무 서두르면 실패하고, 너무 방치해도 상한다. 적절한 기다림, 그것이 기쁨의 전제다.


그래서 나는 이사야가 말하는
큰 기쁨을 즉각적인 환희로 읽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쌓인 긴장의 해소이며, 긴 과정 끝에 도달한 안정 상태다.
식품으로 말하자면, 불안정한 중간 생성물이 사라지고, 마침내 조화로운 최종 산물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사야는 이어서 멍에와 장대, 몽둥이가 부서진다고 말한다.
억압의 도구들이 해체되는 장면이다. 이것을 나는 부하(load)가 제거된 상태로 생각해 본다.
식품 시스템에서 과도한 압력은 품질을 망칠 수 있다.
지나친 가열, 과한 교반, 무리한 생산 속도는 조직감을 파괴하고 맛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다.
좋은 음식은 대개 불필요한 압력을 덜어낸 상태에서 탄생한다.


미디안을 치신 날처럼
, 한순간에 구조가 무너질 때가 있다.
균형을 억지로 유지하던 힘이 사라지면, 시스템은 오히려 제 본래의 질서를 회복한다.
우리 인간의 삶도 그렇다. 늘 짊어지고 있던 멍에가 벗겨질 때, 우리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군화와 군복이 불꽃의 먹이가 된다는 구절에서는
, 나는 열의 방향성을 떠올린다.
같은 열이라도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파괴를 위해 쓰인 에너지는 소모되고 사라지지만, 조리를 위해 쓰인 열은 새로운 질감을 만든다.
이사야의 불은 더 이상의 폭력을 위한 불이 아니라, 낡은 구조를 태워 없애는 정화의 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선언에 이른다.
식품과학자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는 아주 작은 시작 물질이다.
거창한 장비도, 복잡한 공정도 아니다. 한 아이. 미약하지만 결정적인 존재다.

발효는 늘 소량의 종균으로 시작된다.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미생물이 전체를 바꾸어 버린다.
이사야가 말하는 아기도 그렇다. 힘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질서를 새롭게 설정하는 씨앗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평화의 군왕인 것이다.
평화란 힘의 균형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무리 없이 작동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왕좌 위에 세워질 그 왕국이 공정과 정의로 굳게 선다는 말은,
식품 안전과 품질 관리의 원칙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은 공정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누군가를 착취한 원료, 불투명한 공정, 과도한 이윤 추구는 결국 전체를 병들게 한다.
정의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생존 조건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래서 나에게 신비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어둠은 준비의 시간이며, 빛은 조건이 맞춰졌음을 알리는 신호다.
기쁨은 기다림의 결과이고, 평화는 억지가 제거된 상태다.

식품을 연구하였던 나도 자주 배운다.
좋은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변화는 늘 작고 조용하게 시작된다는 것을.
이사야가 본 빛도, 아마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그러나 결국 모두의 삶을 바꾸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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