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기다림 끝에 시작되는 생명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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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즈카르야의 찬가를 식품과학자의 눈으로 —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오랫동안 말을 잃고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 시간은 마치 발효가 시작되기 전의 유도기와도 같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미생물은 그 시간 동안 환경을 살피고, 효소를 깨우며, 스스로를 반응의 자리로 옮긴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즈카르야의 침묵도 그러했으리라. 그의 침묵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기다림이었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리고 찬가가 터져 나온다.
그것은 긴 겨울을 지나 흙 속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순간과도 같다.
땅은 오래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셨다.”
이 말은 농부의 언어로 읽을 때 더욱 생생해진다.
농부는 밭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흙을 만지고, 잎을 살피고, 병든 곳이 없는지 직접 확인한다.
하느님은 멀리서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밭으로 내려오시는 분이다.
속량은 수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잘 자라지 못한 작물, 병든 나무, 버려질 뻔한 열매를 다시 살려내는 일.
식품과학에서도 우리는 늘 회복을 다룬다.
변질되기 직전의 원료를 살리고, 버려지던 부산물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구원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다.”
토양은 기억한다. 한 번 무너진 밭은 오랫동안 그 흔적을 남기고,
정성껏 가꾼 땅은 다음 세대까지 그 결과를 전한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는 지나온 환경을 기억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하느님의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생태의 기억이다.
씨앗을 뿌리신 분은, 싹이 트고 자라 열매 맺기까지의 시간을 모두 기억하신다.
계약이란 그래서 약속이기보다, 생명의 질서에 대한 신뢰처럼 들린다.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씨를 뿌리기 전 밭을 고르는 사람이다.
씻기지 않은 재료로는 음식을 만들 수 없듯,
정리되지 않은 삶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기 어렵다.
요한의 회개는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삶의 환경을 바꾸라는 초대였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별과 빛은, 식품과학자에게는 곧 생명의 에너지로 읽힌다.
빛이 들어오면 생명은 다시 흐른다.
광합성이 시작되고, 에너지가 저장되며, 성장이 가능해진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이 말씀은 위로이기 이전에 선언이다. 빛이 공급되면, 생명은 반드시 반응한다.
그래서 찬가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여기서 평화란 멈춤이 아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무너졌던 균형이 다시 맞춰진 상태,
곧 생명이 제 자리를 찾은 상태다.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농사의 이치를 배워 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찬가를 이렇게 읽는다.
하느님은 가장 인내심 많은 농부이시며, 가장 정확한 과정을 아시는 분이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시고, 기다림을 생략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침묵의 시간이 충분히 익었을 때,
생명은 반드시 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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