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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다시 태어나는 이름의 순간 : 요한

제임스
2025-12-22 21:50 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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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서 발효로

 

엘리사벳의 해산은 조용히 이루어지지만, 그 여운은 마을 전체를 흔든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보다 더 큰 파문은, 그 아이의 이름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관습을 따라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주려 한다. 익숙함은 안전하고, 반복은 편안하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단호하게 말한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호칭의 선택이 아니라
, 과거의 연속을 끊고 새로운 방향을 여는 선언이다.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이 장면에서 자주 발효를 떠올린다. 발효는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연장하지 않는다. 같은 원료라도 미생물과 시간, 온도와 산소의 조건이 바뀌면 전혀 다른 맛과 향, 전혀 다른 생명성을 드러낸다. 겉보기에는 고요한 침묵의 시간 같지만, 내부에서는 가장 역동적인 변환이 일어난다. 즈카르야의 침묵도 그와 닮아 있다. 말하지 못하는 시간이 벌처럼 쓰고 길게 느껴졌을지 모르나,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글 쓰는 판에 적는다
. “그의 이름은 요한.말이 아닌 글로 먼저 고백한 그 이름은, 마치 씨앗에 붙인 정확한 라벨과도 같다. 무엇을 심었는지 분명히 해야, 그 다음의 과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 순간, 묶여 있던 혀가 풀리고 찬미가 터져 나온다. 침묵은 끝나고, 소리는 돌아온다. 정확한 이름이 주어질 때, 기능이 회복된다는 사실은 신앙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과학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분을 오인하면 공정이 어긋나고, 이름을 바로잡으면 반응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 두려움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생긴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 자체를 품으라는 초대다. 생명은 태어날 때 이미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조건 속에서 형성될 잠재성이기 때문이다. 발효식품이 숙성 중에 함부로 뚜껑을 열지 않듯, 이웃들은 그 질문을 마음에 새긴다. 관찰하고 기다리기 위해서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자비를 뜻한다. 자비는 즉각적인 보상보다 지속적인 보살핌에 가깝다. 급격한 변화보다, 조건을 지켜 주는 손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기적의 폭발이 아니라 과정의 신실함을 말한다. 주님의 손길은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작동한다. 온 산악 지방에 퍼진 소문은 결과보다 과정을 증언한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다
. 관습대로 이름 붙이려는 유혹과, 새 이름을 받아들이라는 부르심 사이에서 망설이는 시간. 말이 막히고, 길이 보이지 않는 침묵의 계절. 그러나 그때가 바로 내부에서 가장 깊은 변화가 일어나는 때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름을 붙이고, 조건을 지키며, 시간을 허락할 때삶은 다시 발효를 시작한다.

그렇게 태어난 한 아이를 두고 사람들이 묻는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되돌아온다.

지금의 침묵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다음 계절을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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