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마니피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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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천함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비천함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언어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늘 높은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
역사의 가장자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의 삶을
하느님은 먼저 바라보십니다.
마리아의 위대함은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굽어보시는 시선을 알아보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행복은 성취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 문장은 미래를 향한 자랑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은총을 알아본 고백입니다.
마리아는 아직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행복을 말합니다.
아이를 낳지도 않았고,
앞날의 고통도 아직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 맡겨진 삶 자체가
이미 복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행복은
조건부가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여기서 ‘큰일’은
눈에 띄는 기적이나 세상의 성공이 아닙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가장 큰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그녀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일을
자기 공로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든 무게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돌립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멀리 계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계산과 욕망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조종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참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 됩니다.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자비는 한 사람의 특별한 체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개인의 감사를 넘어 역사의 노래가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한 시대의 감동으로 소비되지 않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세대를 넘어 흐릅니다.
그래서 이 찬가는
마리아 개인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의 비천함을
숨겨야 할 약점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일하시기 가장 좋은 자리로
내어 드리고 있는가.
마리아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가장 큰 은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겸손한 빈손이
지금도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으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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