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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의로운 싹이 자라는 밭

제임스
2025-12-18 01:58 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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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23,5-8을 농업의 언어로 읽다
 
농부는 씨앗을 뿌릴 때 당장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다.
씨앗은 흙 속에 묻히는 순간, 마치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농부는 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예레미야는 말한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정의는 번쩍이는 성과나 즉각적인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씨앗처럼, 조용히 흙 속에서 시작된다.
싹은 작고 연약하여 병아리도 뜯어 먹을 수 있지만,
이미 열매의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름’이 아니라 ‘때’다.
비가 와야 할 때 오고, 햇볕이 머물러야 할 만큼만 머무는 것.
이를 무시하면 아무리 좋은 종자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예레미야가 말하는 왕은 이 ‘때’를 아는 사람이다.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뿌리를 먼저 살피는 통치자.
그래서 그는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룬다.” 라고 말한다.
정의란, 밭을 고르게 만드는 일과 닮았다.
한쪽만 지나치게 비옥해도 다른 쪽은 메말라 간다.
비료를 과하게 주면 작물은 쓰러지고, 물을 독점하면 뿌리는 썩는다.
공정한 농사는 모든 뿌리가 숨 쉴 수 있도록 토양을 고르게 만드는 일이다.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정의도 그러하다.
강한 작물만 살아남는 밭이 아니라, 약한 싹도 자랄 수 있는 땅.

이스라엘의 기억이 바뀐다는 대목은 농업적으로 보면 ‘경작의 전환’이다.
이집트 탈출은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구원이었지만,
이제 하느님은 흩어진 이들을 다시 불러 살 수 있는 땅으로 데려오신다.
구원은 단순히 굶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아가는 상태다.
농업과 식품의 관점에서 보면, 진짜 구원은 원산지를 되찾는 일이다.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토양과 계절을 회복하는 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리듬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건강해진다.
식품을 연구하다 보면 발효의 시간이 떠오른다.
발효는 통제의 과정이 아니다.
기다림과 신뢰의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천천히 질서를 만들고, 결국 새로운 맛을 완성한다.
하느님의 정의도 그렇다.
소란스럽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그러나 반드시 변화시킨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고향은 돌아가면 바로 열매가 맺히는 곳이 아니다.
다시 밭을 일구고, 흙을 만지고, 씨를 뿌려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그 땅에서는 왜 씨앗을 심는지 알고,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아직은 싹일지 모른다.
눈에 띄지 않고, 성과로 말하기 어려운 시기.
그러나 하느님의 농사는 늘 싹에서 시작된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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