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서 4장을 쓰면서] 에페소서 4장을 식품의 언어로 읽다
본문
에페소서 4장을 식품의 언어로 읽다
에페소서 4장을 읽다 보면, 바오로는 교회를 하나의 사상 공동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학적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한 몸”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때의 몸은 상징적 표현을 넘어, 실제로 기능과 조절, 성장과 노화,
균형과 붕괴가 일어나는 유기체적 몸에 가깝다.
식품과학을 공부한 이들에게 이 장은 신학 문헌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리학적 모델처럼 읽힌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다양성과 균형이다.
인간의 생존은 단일 영양소로는 불가능하다.
탄수화물은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조직을 만들지 못하고,
단백질은 구조를 세우지만 즉각적인 에너지를 주지는 않는다.
지질은 생리 기능을 조절하지만 과잉 섭취 시 독이 된다.
에페소서 4장에서 바오로가 말하는 다양한 은사와 직무는 이와 정확히 겹친다.
사도, 예언자, 교사, 목자라는 구분은 위계가 아니라 기능 분화에 가깝다.
어느 하나가 없어도 몸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어느 하나가 과잉되면 오히려 전체 시스템을 교란한다.
바오로가 강조하는 겸손과 온유, 인내는 도덕적 덕목 이전에
시스템 안정화 인자로 이해할 수 있다.
식품공정에서 pH 완충 능력이나 항산화 시스템이 없다면,
원료는 쉽게 변질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갈등과 마찰은 필연적이지만, 이를 완충해 줄 조절 기전이 없다면 조직은 빠르게 부패한다.
에페소서 4장은 공동체 윤리를 “착하게 살라”는 명령으로 제시하지 않고,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라”는 생존의 언어로 제시한다.
성숙과 미성숙의 대비 또한 식품과학적으로 매우 명확하다.
바오로는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를 ‘이리저리 흔들리는 어린아이’에 비유한다.
이는 덜 익은 식품, 혹은 소화 효소 체계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와 유사하다.
미숙한 식품은 외형상 먹을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흡수되지 않거나 독성을 유발한다.
신앙 역시 충분한 시간과 반복을 통해 숙성되지 않으면,
자극적인 주장이나 유행성 담론에 쉽게 반응하게 된다.
이는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소화 능력의 문제다.
바오로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실천하라”고 말할 때, 이는 영적 감상주의가 아니다.
식품과학적으로 보면, 이는 고온 단시간 처리보다는 저온 장시간 숙성에 가까운 방식이다.
급격한 가열은 빠른 결과를 주지만, 깊은 구조 변화를 만들지는 못한다.
반면 서서히 진행되는 발효와 숙성은 조직 전체의 성질을 바꾼다.
성숙한 신앙은 이처럼 시간과 반복, 실패와 회복을 통해 구조적으로 형성된다.
에페소서 4장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언어에 대한 경고다.
바오로는 더러운 말, 분노의 말, 험담을 강하게 경계한다.
이는 윤리적 문제 이전에 오염 관리의 문제로 읽을 수 있다.
식품 시스템에서 미생물 오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빠르게 전체를 망가뜨린다.
하나의 상한 원료가 전체 배치를 폐기하게 만드는 것처럼,
공동체 안의 말은 가장 빠르게 전염되고, 가장 깊이 침투한다.
반대로, 덕을 세우는 말은 기능성 성분과 같다.
소량이라도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고 회복을 촉진한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바오로의 권고는 식단 전환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다른 신체 상태를 기대할 수 없듯,
같은 정보 소비, 같은 말의 습관, 같은 관계 구조 안에서 ‘새로운 인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식품과학에서 체질 개선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 섭취 패턴의 변화에서 일어난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고 있는가가 결국 그 사람의 영적 체질을 결정한다.
에페소서 4장을 식품과학의 언어로 다시 읽으면,
교회는 이상적 공동체라기보다 정교하게 조절되어야 하는 생명 시스템에 가깝다.
실패와 불완전함을 전제로 하되,
회복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갖춘 몸이다.
이 몸을 살리는 것은 탁월한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균형과 절제, 반복과 숙성이다.
결국 바오로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하다.
교회는 “멋진 음식”이 아니라 “오래 먹어도 탈 나지 않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것.
화려한 맛보다 지속 가능한 영양이 중요하다는 것.
이는 신앙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식품과학자의 언어이기도 하다.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