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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주일에 생각하는 사랑

제임스
2025-12-15 07:49 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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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모도 자식의 일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성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고, 계산보다 먼저 마음이 앞선다.
이런 부모의 사랑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앞둔 어미들의 태도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를 둔 동물들은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거북이나 연어, 민물에 사는 개구리들은 알을 낳고는 이내 자리를 떠난다.
그 이후의 생존은 자연의 섭리에 맡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두꺼비다.

두꺼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과감히 던진다.
산란을 앞둔 두꺼비는 일부러 뱀 앞을 서성거리며 도발하듯 모습을 드러낸다.
뱀이 덤벼들어 두꺼비를 삼키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두꺼비의 피부에는 항균 물질과 함께 강한 독이 들어 있어, 이를 삼킨 뱀은 곧 죽고 만다.
두꺼비 자신은 이미 생명을 잃었지만,
뱀의 배 속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그 뱀의 시체를 먹으며 성장을 시작한다.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새끼들의 생존을 준비해 주는 셈이다.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 불러야 할지, 본능이라 해야 할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철저히 혈연에 기댄 희생이라는 점이다. 나와 연결된 생명을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기와 아무런 혈연적 관계도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른 차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시작한 젊은 연인들을 보면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때의 사랑은 를 내려놓은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삶이 일상으로 굳어지면서 사랑은 조금씩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 간다.
헌신은 책임으로 바뀌고, 열정은 계산으로 바뀐다.
그러다 보면 한때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었던 사랑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만다.
나 아닌 사람을 나처럼 아낀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사랑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사회에서, 그것도 극히 드문 사람들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슈바이처 박사나 마더 데레사, 이태석 신부님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그들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했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그 사랑을 증명했다.
그들의 삶 앞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남을 위해 생각하고, 남을 위해 베푸는 사랑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그것을 놓치며 살아간다.
그래서 교회는 자선 주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운다.
핑크빛 초와 꽃, 신부님의 제의까지도 핑크색으로 통일하는 이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기쁨과 사랑, 나눔의 정신을 다시 마음에 새기자는 상징이다.

과연 우리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 대한 작은 배려, 작은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오늘 내가 내어줄 수 있는 작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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