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알아보지 못한 맛,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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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엘리야와 감각의 과학(다른 시각에서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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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같은 음식을 먹고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깊은 맛이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도대체 뭐가 맛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식품과학에서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맛은 혀 위에만 존재하지 않고,
경험과 기억, 그리고 훈련된 감각 속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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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서는 엘리야를 이렇게 기억한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집회 48,11)
엘리야는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진 예언자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면 그는 부활의 예표이며,
과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는 시간과 분해를 넘어선 생명 상태,
곧 변질되지 않은 본래성을 상징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 기대를 단호하게 뒤집는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마태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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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이는 이미 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식품과학을 연구해 온 사람에게 매우 낯익다.
발효식품을 처음 접한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냄새가 이상하다.”
“왜 이렇게 자극이 없지?”
그러나 그 말은 그 음식에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감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고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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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과학에는 ‘미각 역치(threshold)’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맛 성분이 분명히 존재해도
그 농도가 개인의 인지 역치 아래에 있으면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감지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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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도 그러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한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내려오는 극적인 인물이었지만,
실제로 온 엘리야는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는 거친 목소리였다.
그의 메시지는 즉각적인 쾌감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엘리야를
자기 기준에 맞게 해석하고, 자기 입맛에 맞게 다루었다.
마치 섬세한 발효식품을 강한 조미료로 덮어버리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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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집회서는 단언한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식품과학에서 ‘생존’이란
단순히 부패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미생물은 열과 산, 염분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향과 맛을 만들어 낸다.
죽음처럼 보이는 조건 속에서 생명은 다른 방식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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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도 그러하지 않을까.
눈부신 사건으로만 기다리지만,
사실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천천히 발효되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엘리야를 알아본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여운으로 남는
숙성된 맛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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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삶에도
엘리야는 이미 와 있을지 모른다.
화려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불편한 진실의 맛을 지닌 채.
그 맛을 알아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 감각은
이미 부활의 세계에 한 발 들어선 감각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 말은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감각이 깨어난 삶 속에서
이미 시작된 생명의 선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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