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말씀] 광야에 불어오는 작은 숨결 하나
본문
(이사야 41,13-20 )
요즘 따라 마음이 이유 없이 건조해지는 때가 있다.
일상의 리듬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들이 조용히 쌓여 가는 듯한 날들이다. 그럴 때면, 문득 이사야의 말씀이 내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 내려앉는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 주님이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이 구절은 언제 읽어도 마음의 결을 반듯하게 다듬어 주는 힘이 있다.
마치 오래된 연구노트를 덮고 창밖의 바람을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처럼, 말씀 한 줄이 삶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우리 안의 ‘작음’을 아시는 분
이사야는 우리를 “벌레 같은 야곱”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거칠게 들렸던 표현이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의 작은 마음과 한계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바로 그런 표현을 쓰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이 너무 작다고 느낀다. 강단에서 수백 명의 학생 앞에 서 있을 때도, 오래 연구한 과제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도, 또는 문득 혼자 남겨진 듯한 저녁이 찾아올 때도 그 ‘작음’은 피할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주님은 바로 그 작은 자리로 오신다.
우리의 크기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작은 틈새에서 그분의 은총이 스며드는 통로를 만드신다. 그래서 다시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삶의 어느 시점에는 문제들이 산처럼 앞에 놓여 있는 듯 보이지만 돌아보면 많은 순간 그 산은 우리 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길로 깎여 나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님은 우리를 “새 타작기”로 만드시겠다고 하셨다. 이는 우리 힘을 키워 주신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걱정이라는 큰 바위도 주님 앞에서는 부서져 먼지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는 사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달라지게 하고 그 달라진 눈이 다시 우리를 살린다.
과학적 관찰이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듯, 영적 관찰은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한다.
주님은 그 둘을 함께 사용해 우리 안의 산들을 하나씩 낮추신다.
갈증의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응답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말을 잃는 순간이 찾아온다.
기도가 흐르지 않고, 마음의 샘이 말라간다고 느껴지는 때.
그 갈증의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한다.
“물이 없어 그들의 혀가 탄다.”
이 단순한 표현이 우리의 삶을 놀라울 만큼 정확히 그려낸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신다.
“나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버리지 않는 사랑,
기다려 주는 사랑,
말이 없어도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랑.
그 사랑은 우리가 찾는 물보다 먼저 우리에게 찾아온다.
마른 땅 위에 심어지는 나무들
향백나무, 아카시아, 도금양, 소나무…
사막에서는 도저히 자랄 수 없는 나무들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 나무들을 직접 심으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기적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회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사막처럼 보이던 자리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는 때가 있다.
오래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갈 때,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이 다가올 때,
잃었다고 여겼던 희망이 다시 얼굴을 보일 때,
마음의 샘에서 다시 따뜻한 말이 흘러나올 때.
이 모든 순간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든 열매가 아니라,
주님께서 손수 심으신 나무다.
그리고 그 나무가 우리 마음에서 그늘을 만들고, 향기를 내고,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
결국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능력이나 계획, 성취가 아니라 붙들고 계시는 그 손이다.
그 손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우리는 이미 붙들려 있다.
믿음은 바로 그 사실을 하루의 언저리에서 다시 기억하는 일이다.
주님이 우리 손을 붙들고 계시기에 광야에서도 물을 찾을 수 있고,
사막에서도 나무가 자랄 수 있으며,
오늘의 작은 걸음도 내일의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약속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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