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지치지 않는 힘에 대하여
제임스
2025-12-1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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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야 40,25-31 에 대한 묵상입니다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조차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몸이 먼저 지치고, 마음이 따라 비틀거리고, 마침내는 기도마저도 힘겹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사야의 짧은 외침을 떠올린다.
몸이 먼저 지치고, 마음이 따라 비틀거리고, 마침내는 기도마저도 힘겹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사야의 짧은 외침을 떠올린다.
“젊은이도 피곤하고, 청년도 비틀거린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피로를 부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피로를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신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는다.”
“그러나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하느님은 우리를 피곤하지 않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을까?
왜 때로는 바닥까지 떨어져야만 다시 일어서는 힘이 생기는 것일까?
왜 때로는 바닥까지 떨어져야만 다시 일어서는 힘이 생기는 것일까?
별이 가득한 밤 하늘을 바라보면, 지치지 않는 존재와 피곤한 인간의 차이가 선명해진다.
별들은 붉은 빛, 푸른 빛을 내며 끊임없이 타오르는데도, 그 밝음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 않는다.
이사야는 이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
별들은 붉은 빛, 푸른 빛을 내며 끊임없이 타오르는데도, 그 밝음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 않는다.
이사야는 이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
“저 군대를 수대로 불러내시고 이름을 부르시는 분,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눈앞의 별들이 마치 하느님의 숨결처럼 느껴지곤 한다.
불타오르면서도 지치지 않는 생명의 근원,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그 엄청난 에너지의 흔적. 우리는 그저 작은 생명체일 뿐이다.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눈물이 차면 울어야 하며, 기력이 다하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치지 않으신다. 피곤이라는 단어가 그분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불타오르면서도 지치지 않는 생명의 근원,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그 엄청난 에너지의 흔적. 우리는 그저 작은 생명체일 뿐이다.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눈물이 차면 울어야 하며, 기력이 다하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치지 않으신다. 피곤이라는 단어가 그분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의 능력과 우리의 연약함 사이에 우리는 늘 고민 속에 서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졌습니다.”
“나의 권리는 하느님께서 보지 못하셨습니다.”
“나의 권리는 하느님께서 보지 못하셨습니다.”
마음이 지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런 오해와 착각이다.
하느님에게 잊혔다는 느낌.
내 일이, 내 고통이, 내 눈물이 하느님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났다는 느낌. 그러나 이사야는 단호하게 말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에게 잊혔다는 느낌.
내 일이, 내 고통이, 내 눈물이 하느님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났다는 느낌. 그러나 이사야는 단호하게 말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다.”
영원하신 분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의 시련은 마치 숨 한번 쉬는 시간만큼 짧고,
우리의 고난은 바람 한 줄기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가 느끼는 피로와 무게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신다.
우리의 고난은 바람 한 줄기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가 느끼는 피로와 무게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신다.
이사야는 한 줄 더 덧붙인다.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피곤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노력’이 아니라 ‘새로운 힘’이다.
지친 사람에게 던져야 할 말은
지친 사람에게 던져야 할 말은
“조금 더 힘내라”가 아니라 “잠시 쉬어라, 그리고 그분께 기대라”는 초대이다.
과학에서도 비슷한 진리를 이야기한다.
몸이 지친다는 것은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회복하라”는 신호다. 세포는 휴식 속에서 재생되고, 뇌는 고요 속에서 다시 맑아지고, 심장은 잠시 멈추듯 쉬어야 더 강하게 뛴다.
몸이 지친다는 것은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회복하라”는 신호다. 세포는 휴식 속에서 재생되고, 뇌는 고요 속에서 다시 맑아지고, 심장은 잠시 멈추듯 쉬어야 더 강하게 뛴다.
그리고 신앙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인간의 힘이 끝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힘이 시작된다.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다.”
독수리는 거대한 날갯짓으로 하늘을 뚫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을 탄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류를 찾아 그 위에 가볍게 몸을 맡기면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높게 올라간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삶이 이와 같다.
힘으로 올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바람을 온전히 신뢰하고 기대는 삶이다.
내가 오르지 않고도 그분이 나를 올려주시는, 그런 상승이다.
우리의 피로가 삶을 무겁게 짓눌 때, 그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날갯짓이 아니라 그분이 보내주시는 기류를 느끼는 감각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오늘 하루 나를 지탱해 준 작은 은총을 떠올리면 그 순간 이미 바람이 시작된 것이다.
지쳐 있는 오늘, 나는 이사야의 마지막 한 문장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주님께 바라는 이는 새 힘을 얻는다.”
반드시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갈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조금 가벼워지는 마음,
조금 깊어지는 숨.
조금 따뜻해지는 위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것이면, 오늘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조금 가벼워지는 마음,
조금 깊어지는 숨.
조금 따뜻해지는 위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것이면, 오늘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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