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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이 깃든 기도, 그 너머의 산들

제임스
2025-07-27 11:40 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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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다. 고개 하나를 간신히 넘었더니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서 있는 인생의 비유다. 하지만 그 산을 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간절함이고, 때론 기도가 된다. 나에게는 이 말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 유학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기 위해, 나는 매 순간 간절함을 품고 기도하며 살아야 했다.


유학 초기, 100달러의 기도

     불과 일만 달러를 들고 떠난 미국 유학. 1년이 지나자 통장에 남은 돈은 고작 100달러도 채 되지 않았다. 아내의 불안은 컸고,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성경 말씀을 되 뇌이며 아내를 달랬다.

하늘의 새들도 집이 있고, 하느님이 보살펴 주시거늘 하물며 나를 더 귀하게 여기시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는 기도했다.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그 가운 데서도 신앙을 놓지 않게 해 달라고. 그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망 속에 찾아온 한 줄기 빛이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한인 천주교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귀국할 때까지 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였다.


또 다른 갈림길, 미국 회사의 제안

    2년째 되던 해, 지도 교수가 맥주 회사로 옮기며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월급도 두 배였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한국에서 의 안락한 직장을 접고 공부하러 온 길이었다. 미국의 식품 회사에 가기 위해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새로운 불안으로 이어졌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귀국해야 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공부할 자격이 없다면 여기서 끝내주시고, 그럴 자격이 있다면 길을 열어 달라고. 간절한 기도의 응답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귀국하기 세달 동안은 2~3시간 밖에 못 자면서 맡은 업무를 마무리 하였다. 자상하신 교수님꼐서는 귀국하고 자리 잡으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라며 석달 치 월급을 두 배씩 인상하여 주셨다. 88올림픽 기념 호돌이 T-셔츠를 10벌을 사서 교수님과 실험실의 동료들에게 보내며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렸다.


시험이라는 큰 산

     박사 자격 시험은 또 다른 고비였다. 4시간 동안 다섯 명의 교수 앞에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너무 도 긴장해 한 문제에서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판정은 모호했다. “불합격 시키기도, 합격 시키기도 애매하다.” 결국 재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도 시험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초조함 속에서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타 들어 갔다. 나는 날마다 기도했다. 하루 빨리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또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리고 마침내 시험은 치러졌고, 나는 합격했다. 조용히,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의 기쁨이 밀려왔다.


귀국을 위한 기도, 그리고 응답

     이제 박사 학위만 받으면 모든 일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산을 가리켰다. 매년 5~6천 명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얻는 이는 단지 2~300명에 불과했다. 또 다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수녀님께 들은 말씀이 떠올랐다.

매달 첫번째 금요일 미사에 참여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아울러 내가 하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열 달 뒤에 하느님께서 응답해주실 거예요.”

나는 그 가르침을 따라, 매달 첫 금요일마다 미국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여했다. 조용히 기도 드리며 귀국하여 직장만 얻게 해주신다면, 성당 봉사에 평생 헌신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덟 번째 미사를 드린 그날, 한국에서 채용 소식을 받았다. 정말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귀국하면 가까운 성당에서 봉사 활동을 할 것을 굳게 결심하였다. 


봉사의 삶, 기도의 응답

    귀국하자마자 나는 집 근처 공릉동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사무장에게 말했다.

가장 힘들고 남들이 잘 안 하려는 일을 맡고 싶습니다.”

놀란 사무장의 말에 따라 만난 분은 키 큰 아일랜드 출신의 신부님 이었다. "어떤 친구야?  힘든 일을 하겠다고 찾아 온 친구가?" 그분과의 면담 후 나는 청소년 분과장을 맡게 되었다. "그일이 그렇게 힘이 듭니까?" 나의 질문에 여러 명의 대학교수들도 몇 달 못 버티고 그만두었던 자리였다. 그 뒤로 중계동, 하계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3곳의 성당에서 거의 20년 넘게 청소년 분과 봉사를 이어왔다.

가끔은 사비를 써야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40여년 전 강남의 성당에서는 청소년 분과장이 연간 백만 원 정도를 개인 돈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신부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은 걱정 말고, 시간을 내 주세요.”

나는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내어 드릴 수 있다며 봉사를 이어갔다.

 

진정한 기도는 나를 바꾸는 힘

     돌이켜보면, 간절한 순간마다 기도를 올렸고, 그때마다 나는 응답을 받았다. 하지만 그 기도는 단순히 내 바람 만을 하느님께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 변했고, 변화하려 노력했다. 응답은, 아마도 내가 변화의 의지를 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산 넘어 산  속의 인생에서도 부족함을 앞두고 막막하였을 때 기도는 간절함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내가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다짐으로 이어져야 했다. 하느님을 감동 시키는 것은 내 기도의 분량이 아니라, 내 삶의 태도임을 나는 그 긴 여정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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