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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문화 강좌] 내몸이 요구한 계산서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

제임스
12시간 0분전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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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신다는 것을 모릅니까?" (1코린 3,16)


나이가 들면서 점차 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몸이 늘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것만 같았다. 

밤을 새워 책을 읽어도 괜찮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다음 날이면 금세 회복되었다. 

무리하게 일하고 쉬지 않아도 며칠 정도는 몸이 묵묵히 버텨 주었다. 

마치 무한한 자원을 가진 것처럼 살아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몸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혈압이 오르고 혈당 수치도 걱정된다.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생기고 병원을 찾는 횟수도 늘어난다. 

어느새 병원 방문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젊은 날의 생활습관, 무리했던 시간들, 

소홀히 했던 건강관리까지 몸은 하나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조용히 계산서를 내민다.

"이제는 계산할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도 든다.

왜 이렇게 갑자기 아파졌을까. 

왜 예전 같지 않을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몸은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피곤하면 쉬라고 말했고, 무리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통증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식품과학을 공부하며 항상성의 중요성을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내 몸이 보내는 항상성의 경고를 놓칠 때도 있었다.

몸은 늘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신앙 안에서 바라보면 몸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성전이며, 

이 세상에서 영혼이 머무는 집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집을 함부로 사용한다. 

욕심과 조급함 속에서 몸을 혹사시키고, 

영혼이 머무는 집을 소중히 돌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우시다.


몸은 냉정하게 기록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늘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주신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며 돌아설 때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여라."

몸의 장부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젊은 날의 무절제가 남긴 흔적은 평생 함께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의 장부는 다르다. 

회개와 사랑, 감사와 절제를 통해 언제든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래서 노년은 단순히 계산서를 받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삶을 더욱 지혜롭게 살아가는 은총의 시간이다.

예전보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감사하고,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시간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통해 삶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4)

그 말씀은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몸에도 해당되는 말인지 모른다.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삶은 몸의 욕망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몸의 소리를 듣고, 

몸을 존중하며, 

몸과 영혼이 함께 평화를 이루는 삶이다.


오늘도 몸은 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기록만 바라보지 않으신다.

부족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려는 마음,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
더 나은 삶을 향해 걸어가려는 노력을 보신다.

그래서 노년의 건강관리는 단순한 자기관리가 아니라 

신앙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

몸을 돌보는 일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성전을 돌보는 일이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남은 삶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봉사하기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가까운 친구와 후배들의 부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더욱 절실히 느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마지막 계산서를 받아들게 된다. 

그러나 그날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맡겨진 삶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가일 것이다.

언젠가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이 오면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실지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 맡긴 육신과 영혼을 어떻게 돌보며 살았느냐?"

그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늘도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리고 감사한다.


아직 걸을 수 있음에,
아직 사랑할 수 있음에,
아직 기도할 수 있음에.

무릎의 통증도,
느려진 걸음도,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일상도,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주님께서 오늘도 나와 함께하신다는 또 하나의 표징인지 모른다.

육신이 보내는 작은 신호마저도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달으며,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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