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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말씀] 그리스도인의 향기

제임스
11시간 57분전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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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흩어진 이들이 낯선 땅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그 이름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 집단을 뜻하는 호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말과 삶, 태도와 관계 안에서 사람들이 ‘저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임을 자연스럽게 알아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다. 이름이란 본래 그 존재의 본질을 드러낼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은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자연을 보면 새끼 새나 오리는 태어나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여기고 따라간다고 한다. 이를 각인이라 부른다. 또 강아지나 맹수의 새끼들은 냄새를 통해 어미를 기억하고 평생 그 향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어미는 끊임없이 새끼를 핥고 품어 주며 자신의 체취를 새긴다. 생명은 그렇게 시각과 후각을 통해 ‘누가 나의 보호자이며 내가 따라야 할 존재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하느님을 알아보고, 또 다른 이를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지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향기로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향기와 마음의 온기로 주님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사도 바오로의 표현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존재이다. 이 향기는 향수처럼 맡아지는 냄새가 아니라, 사랑의 향기이며 자비의 향기이고 희생과 용서의 향기이다.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바로 그러하였다. 그들은 입으로만 예수를 말하지 않았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 가난한 이를 품는 마음,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낯선 이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사랑 안에서 사람들은 그들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래서 세상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곧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주님의 품 안으로 이끌 수 있는가.
화려한 말솜씨도 아니고 논리적 설명만도 아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삶으로 증명된 신앙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통해 위로를 받고, 용서를 경험하고, 이해받고, 사랑받는다면 그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어린 새가 어미를 따라가듯, 상처 입은 영혼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의 뒤를 따르게 마련이다.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건물이나 제도의 성장을 본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안에 스며든 은총의 흔적을 본 것이다. 공동체 안에 맺힌 사랑, 기쁨, 믿음, 그리고 서로를 세워 주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읽어 낸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사랑에 각인된 사람, 그래서 그 사랑의 흔적을 타인에게 남기는 사람이다.
신앙은 결국 ‘누구를 닮아 가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고 성체를 모시며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도 그리스도의 향기와 체취가 우리 존재 안에 배어들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우리 영혼이 주님의 사랑에 물들 때, 우리는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세상이 먼저 알아보게 된다.
“저 사람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구나.”
그리스도인이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은 바로 그 향기를 따라 하느님께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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