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너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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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3장의 이야기는 인류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숨긴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열매를 먹은 뒤, 자신이 알몸임을 깨닫고 두려움 속에 동산 나무 사이로 숨어버린다.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첫 목소리는 꾸짖음이 아니라 질문이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은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묻지 않으신다.
이 질문은 좌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다.
관계가 끊어진 자리에서,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에서,
하느님은 인간의 행동보다 먼저 그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부드럽게 부르신다.
식품과학자에게 이 질문은 마치 식품 품질의 미세한 변화가 시작될 때 들려오는 경고와도 같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온도·수분·미생물의 작은 이상이 내부에서 조용히 변질을 일으키는 것처럼,
죄의 순간도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서 마음의 온도와 습도는 이미 변해 버린다.
“너 어디 있느냐?”는 바로 그 변화를 묻는 질문이다.
이미 틀어진 마음의 방향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하느님은 먼저 찾아오신다.
아담과 하와의 대답은 변명으로 가득하다.
아담은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라 하고,
하와는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라고 한다.
이 장면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습관을 보여 준다.
잘못의 본질보다 변명과 책임 회피가 먼저 튀어나오는 모습,
그리고 자기 안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밖으로 밖으로 원인을 떠넘기는 마음이다.
식품 안전 사고 현장에서 나는 이 장면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오염 사고가 나면 원재료 회사는 공정 문제라 하고,
공장은 장비 문제라고 하고,
관리자는 사람 탓이라고 한다.
책임이 서로에게 미루어지는 순간 오염의 근원은 더 깊이 숨어버리고 문제는 더 큰 혼란으로 번진다.
창세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죄의 본질은 단지 열매를 먹은 행위보다 그 후에 드러나는 인간의 태도—즉, 회피와 두려움, 숨고 싶은 마음—에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변명에 흔들리지 않고 그 마음의 근원, 관계가 끊어진 자리, 상처와 두려움이 시작된 지점을 바라보신다.
뱀을 향한 하느님의 선언 속에는 놀랍게도 심판만이 아니라 희망이 함께 담겨 있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악이 인간에게 상처를 남길 수는 있지만 결국 인간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는 선언이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원복음’이라 불리지만,
식품과학자의 눈에는 마치 부패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발효의 신비처럼 읽힌다.
발효는 언제나 부패와 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곡물이 삭고, 포도가 상하고, 우유가 걸쭉해지는 그 경계에서 새로운 향미가 자라난다.
초기 부패의 냄새 속에서 효모가 자라고 유산균이 동작하며 완전히 새로운 ‘좋은 변화’가 나타난다.
악의 개입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의 자리에서 하느님은 새로운 발효를 시작하신다.
구원은 타락의 한복판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 뒤에 등장하는 장면은 더 인상적이다.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부른다.
“모든 산 이들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죄의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성경은 갑자기 ‘생명’을 말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다.
상처의 마지막에서 하느님은 생명을 다시 시작시킨다.
자연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많이 본다.
썩어가는 과일 속에서 씨앗은 더 단단해지고,
한 알의 밀알이 흙 속에서 사라져야 그 다음 해에 풍성한 열매를 낼 수 있다.
부패와 재생은 언제나 한 뿌리에서 일어난다.
하느님은 인간의 잘못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여전히 간직하게 하신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느님의 물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온다.
“너 어디 있느냐?”
이는 꾸짖음의 질문도, 책임을 따지는 질문도 아니다.
마음의 품질이 어디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관계가 어디서 멀어졌는지,
우리의 내면에서 어떤 작은 발효가 변질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살피게 하는 영적 검사표와 같다.
식품 안전 관리에서는 중요 관문점(critical control point)을 놓치면 문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영성도 같다.
두려움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싶어지는 순간,
숨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이 바로 그 중요한 관문이다.
그때 하느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찾으신다.
상처는 우리의 발꿈치를 물 수 있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늘 곁에서 지탱해 주신다.
그분은 부패의 자리에서도 새로운 발효를 일으키셨던 분,
상처에서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오늘도 그분은 조용히 부르신다.
“너 어디 있느냐?”
이 부르심 앞에서 숨지 않고 나아가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새로운 발효가 시작되는 자리이자
구원의 향기가 피어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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