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자유, 사랑의 책임
본문
오늘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수필입니다
나의 주머니가 항상 텅 비어 있어 친구들의 모임에 나가서 늘 대접만 받을 수는 없다.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한 번쯤은 내가 친구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받은 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자 마음 깊은 양심의 울림일 것이다.
비단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느님으로부터 넘치는 은총을 받았다면 얼마나 더 그분께 보답해야 할까.
오늘의 성경 말씀을 대하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에 잠긴다.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로마 6,18)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루카 12,48)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유와 책임, 이 두 단어가 내 마음의 한가운데서 조용히 부딪히며 울림을 남겼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얽매이지 않고, 내 뜻대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월을 살아오며 깨닫게 된다.
참된 자유는 ‘나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자유’라는 것을.
바오로 사도가 말한 ‘의로움의 종’은 언뜻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오히려 자유의 본질이 담겨 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맛본다.
내 뜻을 내려놓을 때 마음의 짐은 가벼워지고, 그 빈자리를 평화가 채운다.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가장 넓고 깊은 자유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품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받은 것이 많다는 것은 곧 나눌 몫도 많다는 뜻이다.
지식이든, 사랑이든, 건강이든, 신앙이든 —
그 모든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
그분이 내게 주신 탈렌트이자 은총이다.
내게 주신 것이 클수록, 더 많은 이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자유가 사랑으로 이어질 때, 그것은 완성된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자유는 나 혼자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 자유는 누군가를 일으키고, 지탱하고, 위로하라고 주신 것이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
그것이 곧 은총의 자유다.
그 자유가 책임으로, 그 책임이 사랑으로 변해갈 때,
삶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기도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속삭인다.
“주님, 제게 주신 자유를 헛되이 쓰지 않게 하소서.
그 자유로 당신을 사랑하게 하시고,
많이 받은 은총을 기꺼이 나누게 하소서.”
죄에서 해방된 자유가 사랑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
그 길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
그 길 끝에서 하느님의 미소를 만날 때,
나는 다시 자유로워진다 — 은총의 자유 안에서.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