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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음의 은총

제임스
2025-10-21 13:31 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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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5,21)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살다 보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깨어 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의미를 깊이 느낀 것은, 가정의 가장으로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였다.

한창 일에 몰두하며 가정을 꾸려 가던 시절아직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늘 빠듯한 살림이었다그때 딸아이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어느 날 나는 가족 식탁 앞에서 조심스레 한마디를 꺼냈다.

아빠가 너를 대학까지는 보살펴줄 수 있을 거야.

그 이후에는 네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유학도, 취업도, 결혼도 네가 스스로 준비하렴.”

그 말은 어린 외동 딸에게 청천벽력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단순한 경제적 이유 이상으로,

인생을 향한 아버지의 기도와 믿음이 담겨 있었다.

아빠 엄마가 나이가 들어도 너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단다.

너는 네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해.

그 말은 곧, 인생 앞에 깨어 있으라는 당부였다.

딸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단 한 번의 결심으로는 삶의 방향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만, 삶은 조금씩 그 형태를 바꿔 간다.


   시간이 흘러 딸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 유학을 다녀와 취업하여 모든 일을 스스로 해 나갔다.

결혼을 앞두고 내가 물었다.

결혼 준비는 다 되었니? 아빠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그러자 딸은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다 준비했어요. 걱정 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자랑스러움, 감사, 그리고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다.

딸은 어린 시절의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꾸준히 준비해온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깨어 있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는 삶.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 의로움으로 다스려지는 은총의 모습이었다.

세상은 늘 우리를 잠들게 한다.

편안함과 안일함, 익숙한 일상 속에서 영혼은 조금씩 무뎌지고, 마음은 나른해진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잠든 이에게 머무르지 않는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은총이 지배한다.”

이 말은 단순히 하느님의 호의가 우리를 덮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은총이 우리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머물러,

우리의 걸음 하나하나를 이끌어 간다는 의미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새롭게 빚어 가신다.

그분의 손길이 우리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깨어 있음이란, 바로 그 열린 마음의 상태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깨어 있는 종들을 행복하다고 하신다.

주인이 돌아올 때 불을 켜 놓고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종,

그는 기다림의 사람이다.

그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 기다림 자체가 이미 은총의 시간이다.

깨어 있음은 단지 잠을 자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때를 믿고, 그분의 뜻을 향해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어 두는 태도다.

세상이 흔들릴 때에도, 사람의 말이 진리를 가릴 때에도

조용히 자신의 등불을 지키는 사람,

그가 바로 은총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

딸아이에게 했던 그 말은, 사실 하느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기도 했다.

네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깨어 있으라.”

하느님은 우리를 의존하게 하시기보다,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며,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을 키우게 하신다.

깨어 있는 삶이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늘의 등불을 켜 두는 것이다.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그 기다림 자체가 이미 구원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

하느님의 은총이 내 안에서 지배하게 하소서.

그 은총이 나를 늘 깨어 있는 종으로 살게 하소서.

세상의 편안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그 깨어 있음 속에서 우리는

참된 행복을,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맛본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그 말씀은 오늘도 나의 하루를 깨운다.

깨어 있음은 긴장된 기다림이 아니라,

은총 속에서 살아 있는 삶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깨워있음이 두 손주들에게까지도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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