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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 성지를 찾아서

제임스
2025-09-08 03:26 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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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나는 이벽 성당을 찾았고, 광암 이벽이라는 책을 읽으며 마음 깊은 울림을 받았다. 한국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 내리도록 가장 먼저 씨앗을 뿌린 이가 바로 이벽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정약용 가문과 얽혀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천진암으로 향하던 길, 배 위에서 이벽으로부터 천주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 인연이 깃든 마제 성지를 드디어 직접 밟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곳 성지는 상수원 보호구역 안에 자리하고 있어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박한 모습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신앙의 뿌리는 인간의 힘이나 계획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와 고통으로 세워졌음을 더 강하게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명례방 제단 앞에는 순교자들이 감옥에서 사용하던 나무로 만들어 목에 채우던 칼의 고문 기구 다섯 개가 상징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목에 끼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편히 눕지도 못하게 만든 잔혹한 도구였다. 정약용 집안 다섯 분이 이 도구에 묶인 채 신앙을 지키며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 내 심장을 깊이 조여 왔다.

    우리나라의 성지는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기적이나 성인의 공로로 거룩해진 곳이 아니라, 대부분 순교자의 피와 고통이 깃든 자리다. 그래서 성지를 찾을 때마다 믿음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지게 된다. 순교자 성월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지를 찾는 것도 바로 이 정신을 기억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날 들은 신부님의 강론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러 번에 걸쳐 살이 찢기고 뼈가 드러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순교자들은 단 한마디 배교를 거절했다.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참사랑의 기쁨을 이미 맛보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은총이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분과 차별을 넘어 모두가 형제요 자매임을 믿었고, 사랑과 희생의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짧은 순례였지만 나는 깊은 울림을 얻었다. 인생의 길은 저마다 다르지만, 순교자들의 삶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향해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신앙을 품고 자녀를 길러낸 가정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제 성지에서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신앙의 뿌리는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모의 믿음과 기도가 자녀의 삶을 빚어내고,
  그 가정이 교회의 기초가 되며, 그 위에서 신앙 공동체가 세워진다.

     순교자들의 피는 이미 이 땅에 스며들어 우리 교회의 믿음을 살려냈다. 이제 그 정신을 내 가정 속에서 이어 가는 것이 나의 몫이다. 오늘의 나는, 순교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내 가정 안에서 신앙을 심고, 그 사랑을 세상 속에 드러내야 한다는 부르심을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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